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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3 2014-07-17 15:20:0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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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검증을 안해서 마한이 한반도 남부에 있는것이 된다니 무슨 소리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마한에 관한 학설 가운데에는 분명 그 비판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을 교차 검증한 비판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그러한 내용이 임나일본부 설과 같은 내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2712 2014-07-17 15:12:2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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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해가 안되는데 지금 삼국 사기 초기 기록을 두고 이야기 하는게 아니었나요? 사료 비판에 있어, 교차 검증, 사료 대조 등의 작업? 을 거쳐 비판했습니다, 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다른 사료들의 비판까지 함께 흘러들어가야 하는지요? 말 그대로 삼국 사기 초기 기록을 두고 비판을 하는 내용인데 말입니다.

편파적이다 뭐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려면 이를테면 취사 선택 등을 행하여야 하는데 이 삼국 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있어 요체가 되는 내용이 뭔가요? 당연히 삼국 사기 초기 기록에 몰려있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기록들 아닌가요? 그런데 그러한 기록을 두고 특정 대목만을 들고 전체를 부정하던가요, 아니면 그러한 사실을 식민 사관이라 하는 다분히 학문외적인 측면의 주장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은 내용으로 연결 짓던가요?

결국은 삼국 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 할때 왜 다른 사료를 함께 비판하지 않느냐는 것은 더 나아가 그러한 타 사료를 비판하지 않기에 뭔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 그러니까 허수아비 치기나, 훈제 청어를 던지는 것 밖에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2711 2014-07-17 14:37: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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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 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사료 비판이지, 타 국가의 사료에 대한 의존적 성격을 견지하는게 아닙니다, 더욱이 기록 전체를 부정하는것도 아니고 일제 식민 사학에서 비릇된 이야기도 아니지요, 사료 비판이라는게 일제 식민 사학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2.

신문기사의 부분은

“학계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 측 사료보다는 중국·일본 사료에 기대는 측면도 강하고…. 곁들여 말하자면 두계(이병도)의 학설을 절대 깰 수 없는 금과옥조로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고….”(조 관장)

입니다만 '우리 측 사료보다는 중국·일본 사료에 기대는 측면도 강하고' '두계(이병도)의 학설을 절대 깰 수 없는 금과옥조로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같은 다분히 주관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것이 삼국 사기의 초기 기록에 대한 설명이던가요? 분명히 다르게 구별되는 부분인데 말이지요.

3. 삼국 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식민사학이라 한다면 당연히 그러한 태도를 견지한 신채호 선생도 식민사학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2710 2014-07-17 13:56:49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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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7 00:30:22

들리세요 아빠? 매울때는 토마토 쥬스가 좋데요.
2709 2014-07-17 13:48:4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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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삼국 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사료 비판입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고고학적 발굴 등이 존재 할지라도 그 것이 곧 신뢰성을 높여주느냐 입증할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요, 고고학적 발굴 등으로 해소되고 세워진 하나의 기준 혹은 사례를 철회시킨다 하여 초기기록 부분에 집중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다른 부분들을 더 나아가 초기기록의 불합리함을 해소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객관적 증거 즉 식민 사관 등으로 해소하려 하는 것은 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그러한 객관적 증거가 가지는 성격을 보면 알수 있듯 그 내용이나 성격은 철저하게 학문 외적인 부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하는건 학문적인 이야기이고 말이지요.
2708 2014-07-17 13:38:0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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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사기 초기 불신론이 근거가 없다고 하시는데 첫 등장시에 -13세가 되버리는 탈해 이사금은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제위에 올랐을 당시 이미 130살이던 벌휴 이사금이나 장인이 죽고 나서 120~130년이나 지나서 사위들이 죽었다는 미추 이사금이나 110살을 살았다는 흘해 이사금의 사례는 어떻습니까?

백제의 경우는 평균 43년의 재위기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령 기루왕은 2대 다루왕 6년에 태자가 되었는데, AD 77년에 즉위했고 AD 128년에 사망했습니다. 그 아들인 4대 개루왕은 39년간 재위하여 AD 166년에 사망했으며 7대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로, 234년에 왕이 되었는데 이로부터 무려 53년을 재위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이왕은 거의 120세때 왕이 되어 170세가 넘게 살았다는 말이 되지요, 즉 기년이든 왕실 계보이든 기록이든 어떠한 문제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근거가 없거나 어설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일제 시대 운운하시는데,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그러한 비판의 선두주자라는 사실은 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일제나 뭐나 들어갈 문제가 될수가 없지요.
2707 2014-07-17 12:48:01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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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포스터나 방송이나 주체가 되는 인원은 같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은데 주장을 보면 한사군 요동설이라던가 삼국 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라던가 하는 것들 인데 패악질이고 뭐고 나올 이야기가 아닙니다, 후자는 위에서 이야기 한바 있으니 전자를 이야기 하자면 근대적인 식민지 체제를 바탕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식민지라면 당이 도호부를 세운 신라나 발해 모두 당의 식민지라는 이야기인데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2706 2014-07-17 12:37:58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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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 씨는 이글루스의 블레이드 라는 닉네임으로 역사 벨리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으로 나름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알려지신 분이나 아마추어 주제에 전문지식인과 토론을 하려 들지 마라 라는 식의 태도나 허수아비 치기, 훈제청어 던지기,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교차 검증 회피 등등을 하시는 바람에 대체로 평가는 좋지 못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상대가 학부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비 전공분야에 있어 제대로 된 사료 대조 조차 건너 뛰고 권위에 의한 논증을 행하려다 정신승리로 맺음을 한 전례가 솔찮게 나오고 계시지요.

아무튼 이러한 것을 떠나 본문의 주제인 강단 사학 비판을 이야기 하자면 다른 발제문 중에 이런 문구가 있는데,

(출처 . http://rozanov.egloos.com/860506 )

'이렇게까지 식민사학적 성향과 그 성향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비호를 받는 이면에는 역사학계의 기득권 수호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근대화에 관련된 사안 대부분이 일제시대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현실이 역사학계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여기에 권위에 맹종적인 사회분위기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현재 대한민국 대학의 많은 전공 분야에서 스승이나 선배의 연구성과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구자로서의 장래가 걸려 있는 많은 과정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교수들의 평가에 일방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출처의 작성자 분 말마따나 학계에서 어느 정도 폐쇄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학계내 대립 자체가 있을수 있겠습니다만 새로운 발굴성과와 방법론이 등장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는 것인데, 좀 지나친 이야기라 할수 있겠습니다, 당장 자기 스승을 비판하고도 잘 지내시는 학자분은 뭐라고 설명할수 있겠습니까,

사실 상기의 출처에서 역시나 언급된바 있으나 당대의 '정론'을 떨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 역사학자들의 방법론을 많이 물려받았기에 조선의 역사에 대해 완전히 독창적이고 객관적인 이론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병도 선생과 최초 세대의 한국 역사학자들을 '식민사학'이라고 부르는거지, 이들이 식민 사관을 설파 하면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했다는 소리는 아니지요.

거기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하기에 부정적인 견해가 나올 여지는 충분합니다만 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부정을 가지고 식민사학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나 지나친 사고의 비약이 아닐수가 없지요.
2705 2014-07-17 12:12:23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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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7 00:30:22

매운 맛...은..지...용..성....참..기...름
2703 2014-07-17 11:55:46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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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울...땐......토..마..토.... 주..스?
2702 2014-07-17 11:54:27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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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 2014-07-17 11:21:21 4
몇몇사람들의 소위"닥반"에 대한 개념 [새창]
2014/07/17 04:31:50


2699 2014-07-17 11:19:54 2
한국만큼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걸맞는 나라는 없습니다. [새창]
2014/07/17 07:14:11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군요, 민란의 경우 지도자, 지도층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그러한 지도자, 지도층이 소멸할경우 조직 자체가 붕괴되는것은 중국만의 일이 아니며, 징기스칸의 중국 정벌은 이러한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수 많은 국가의 수명에 관련된 유일한 사유도 아닙니다, 지도층,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반란이나 상소로 이어진 경우는 부지기수이며, 어떠한 국가가 소멸하였을때 수복이나 재건을 천명하며 일어난 단체,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동북공정은 영토내 사관 정리 작업이지 위가 무너지면 그 이후로는 전부 우리것이다 라는게 아닙니다.

거기다 일본에서 신분의 변경이 불가능하다 하셨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등 출신이 불명확한 다이묘는 한 둘이 아닙니다, 물론 영주에 대한 반란도 셀수 없는 일들이지요, 명분이라는 것이 중시되어 천황에 대한 충성을 고수하는 것이 악습이라 할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사실상 우리 역사에 있어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특한 사회 문화가 생겨난 적도 없는게 사실이지요, 말 그대로 사회 근간에 깔린 국가 체제를 구성하는 이념, 근왕사상을 움직이는 유교라던가 안보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호국 불교라던가 하는 것들이 중심이 될 따름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몽골이 고려를 내버려둔 것은 그게 이득이라서 이지 결코 무너뜨릴수 없다라고 판단한게 아닙니다, 지속적인 침공에 있어 항상 대화를 시도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동북 3왕가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이건 뒤의 일이지만 대칸의 세력이 되어줄 황금씨족이 될수 있기에 그냥 남겨둔 것 뿐이지요.

특별히 정신력과 저항력이 높다 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일궈내 온 것일따름이지 선민 사상, 우생학 뭐 이런걸 대입시킬 일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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