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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8 2017-04-07 23:09:58 2
계속해서 백병전만 했다고 주장하는 걸로 몰고 가시네요. [새창]
2017/04/07 21:41:35
그래서 바다 가운데로 나와서는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학익진」을 벌려서 일시에 진격하면 각각 지자. 현자. 승자 등의 각종 총통을 쏘아서 먼저 2,3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여러 장수나 군사와 관리들이 승리한 기세로 흥분하며 앞을 다투어 돌진하면서 화살과 화전을 마구 발사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뢰같아, 적의 배를 불사르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거의 다 해버렸습니다.

수천 부사 권준이 제몸을 잊고 돌진하여 먼저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서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비롯하여 머리 10급을 베고, 우리나라 남자 1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광양 현감 어영담도 먼저 돌진하여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쏘아 맞혀서 신의 배로 묶어왔는데, 문죄하기 전에 화살을 맞은 것이 중상이고 말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즉시 목을 베었으며, 다른 왜적을 비롯하여 머리12급을 베고, 우리나라 사람 ·1명을 산채로 빼앗아 왔답니다.

사도 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장을 비롯하여 머리 16급을 베었고, 흥양 현감 배흥립이 왜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8급을 베고, 또 많이 익사시켰습니다.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은 왜대선 1척을 바다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일에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쫓아가서 깨뜨리고 일시에 불살랐습니다.

좌돌격장 급제 이기남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사로잡아 머리 7급을 베었습니다.

좌별도장이며 본영의 군관인 전만호 윤사공과 고 안책 등은 층각선 2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6급을 베었습니다.

낙안군수 신호는 왜대선 1척을 바다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7급을 베었습니다.

녹도 만호정운은 층각대선 2척을 총통으로 속까지 꿰뚫은 것을 여러 전선이 협공하여 불사르고, 머리 3급 베고,우리 나라 사람 2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여도 권관 김인영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3급을 베었습니다.

발포만호 황정록은 층각선 1척을 여러 전선과 협공하여 힘을 모아 깨뜨리고 머리 2급을 베었습니다.

우별도장 전 호 송응민은 머리 2급을 베었습니다.

흥양 통장전현감 최천보는 머리 3급을 베었습니다.

참퇴장 전첨사 이응화는 머리1급을 베었습니다.

우돌격장 급제 박이량은 머리 1급을 베었습니다.

신이 타고있는 배에서는 머리 5급을 베었습니다.

유군 1령장 손윤문은 왜소선 2척에 총을 쏘고 산위에까지 추격하였습니다.

5령장 전봉사 최도전은 우리 나라 소년 3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그 나머지 왜대선 20척. 중선 17척. 소선 5척 등은 좌.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힘을 모아 불살라 깨뜨렸으며, 화살을 맞고 물에 떨어져 익사한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임진장초 한산해전

앞서도 말씀드린바 있습니다만...그 뭐랄까 옮긴 글이나 답글등을 좀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8427 2017-04-07 23:09:00 1
계속해서 백병전만 했다고 주장하는 걸로 몰고 가시네요. [새창]
2017/04/07 21:41:35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일시에 운집하여 철환과 장편전. 피령전. 화전 및 천.지자 총통 등을 비바람같이 발사 하면서 저마다 힘을 다함에 그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습니다.

왜적들은 부상을 당하여 엎어지는 자와 부축하여 달아나는 자의 수을 알 수 없었으며, 높은 언덕으로 도망쳐 진치고서는 감히 나와 싸울 생각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 중부장 광양 현감 어 영담. 전부장 방답 점사 이 순신. 후부장 홍양 현감 배 흥립. 좌척후장 녹도 만호 정 운.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 좌별도장 우후이 몽구. 우별도장 여도 권관 김 인영. 한후장이며 신의 군관인 전 전 군관 고 안책. 급제 송 성.참퇴장 전 첨사 이 응화 등이 번갈아 드나들면서 왜선 전부를 당파 분멸하였으며, 김 완은 우리 나라 소녀 한명을 찾아내었고, 이 응화는 왜인 한명의 목을 베었는데, 왜인들이 멀리서서 바라보며 부르짖고 발을 구르며 대성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그날 당포에서 접전할 때, 우후 이몽구가 왜장선을 수색하여 찾아낸 금부채 한자루를 신에게 보냈는데, 그 부채의 한쪽 중앙에 쓰여 있기를「6월 8일 수길」라 서명하였고, 오른편에 「우시축전수(羽柴筑前守)」라는 다섯 자를 썼고, 왼편에는 「구정유구수전(龜井流求守殿)」라는 여섯 자를 썼으며, 이를 옷칠한 갑 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으로 보아 필시 <수길>이가 <축전수>에게 부신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비포 권관 이 영남이 그 왜장선에서 울산 사삿집 계집종 억대와 거제소녀 모리 등을 산채로 사로잡았는데, 신이 직접 문초한바, 억대의 답하는 내용에,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15일전 왜적에게 포로되어 왜장에게 시집가서 늘 한곳에 있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신의 허망한 생각에 만약 저 적들이 형세가 불리하게 되어 배를 버리고 상륙하면 모조리 섬멸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우리들이 짐짓 포위한 진형을 해체하고 퇴군할 것을 보이면 적들이 필시 그 틈을 타서 배를 옮길 것이니 그때 좌우에서 추격하면 거의 섬멸할 수 있으리라.』 라고 전령한 뒤에 퇴군하여 한쪽을 개방하자, 층각선이 과연 개방된 수로를 따라 나오는데, 검은색 돛을 둘씩이나 달았으며, 다른 배들은 날개처럼 벌려 층각선을 옹위하며 바다로 노를 재촉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의 여러 전선은 4면으로 포위하면서 재빠르게 협격을 가하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또 층각선 밑으로 달려가서 총통을 치솟아 층각선을 깨뜨리고, 여러 전선이 또 화전으로 그 비단 장막과 돛배를 쏘아 맞혔습니다.

그러자,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고 층각 위에 않았던 왜장이 화살에 맞아 떨어졌습니다.

다른 왜선 4척은 이 창황한 틈을 타서 돛을 달고 북쪽으로 달아나려고 하였는데 신과 이억기 등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은 패를 갈라서 접전하며, 또 모조리 포위하자, 적선중의 허다한 적도들은 혹은 물에 빠지기 바쁘고 혹은 기슭을 타고 올라가며 혹은 산으로 올라 북쪽으로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사들은 창 칼 활 화살 등을 가지고 저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추격하여 머리 43급을 베고 왜선 전부를 불살라 버린 뒤에, 짐짓 배 한 척, 남겨둔 채 왜적들의 돌아갈 길을 개방해 두었으나, 이미 황혼이 짙어 어둑어둑하여 육상에 오른 왜적은 다 사로잡지 못하고, 이 억기와 함께 어둠을 타서 그 바다 어귀로 나와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6일 새벽에 방답 첨사 이 순신(李純信)이 <당항포에서 산으로 올라간 적들이 필시 남겨둔 배를 타고 새벽녘에 몰래 나올 것이라>하여 그가 통솔하는 전선을 거느리고 바다 어귀로 가서 적들이 나오는 것을 살피고 있다가 전부를 포획하고 급히 보고한 내용에, 『오늘 새벽에 당항포 바다 어귀로 배를 옮겨서 잠깐 있는 동안 과연 왜선 1척이 바다 어귀로 나오는 것이므로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였습니다.

1척에 타고 있는 왜적들은 거의 100여명이었는데, 우리편 배에서 먼저 지자 및 현자 총통을 쏘는 한편 장편전. 철환. 질려포. 대발화 등을 연달아 쏘고 던질 즈음에 왜적들은 마음이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허등지둥 도망하려 하였으므로 요구금을 이용하여 바다 가운데로 끌어 내자, 반이나 물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왜선에 포로된 우리 나라 사람을 찾아내어 생환하게 하는 것은 왜적의 목을 베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왜선을 불사를 때에는 각별히 찾아서 구해내고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지시하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번에 여러 장수들이 위의 지시에 따라 포로되었던 남녀 6명을 산채로 잡아내었습니다.

이들 중에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거나, 포로된 날자가 짧아서 적의 소행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임진장초 중- 당항포 파트

아 위에건 옥포해전입니다,
8426 2017-04-07 23:07:42 1
계속해서 백병전만 했다고 주장하는 걸로 몰고 가시네요. [새창]
2017/04/07 21:41:35
좌부장 낙안 군수 신 호는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왜적의 머리 1급을 베었는데 배안에 있던 칼 갑옷. 의관 등은 모두 왜장의 물건인 듯 하였으며, 우부장 보성 군수 김득광은 왜대선1척을 당파하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포로되었던 1명을 산채로 빼앗았고, 전부장 흥양 현감 배 흥립은 왜대선2척을, 중부장 광양현감 어영담은 왜중선 2척과 소선 2척을,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은 왜대선 1척을, 우부기전 통장이며, 사도진 군관인 보인 이춘은 왜중선 1척을, 유균장이며 발포 가장인 신의 군관 훈련 봉사나 대용은 왜대선 2척을, 후부장 녹도 만호 정운은 왜중선 2척을, 좌척후장 여도 권관 김 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하고, 좌부 기전 통장이며 순천 대장인 전 봉사 유섭은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포로되었던 소녀 1명을 산채로 빼앗았으며, 한후장이며 신의 군관인 급제 최 대성은 왜대선 1척을, 참퇴장이며 신의 군관인 급제 배 응록은 왜대선 1척을, 돌격장이며 신의 군관인 이 언양은 왜대서 1척을, 신의 대솔 군관인 훈련 봉사 변 존서와 전봉사 김효성등은 힘을 합하여 왜대선 1척을 각각 당파하였으며, 경상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왜선 5척을 당파하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포로 되었던 1명(3명-全書)을 산채로 빼앗았는데, 합해서 왜선 26척을 모두 총통으로 쏘아 맞혀 깨뜨리고 불사르니 넓은 바다에는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덮었으며, 산으로 올라간 적도들은 숲속으로 숨어 엎드려 겁내지 않는 놈이 없었습니다.

-임진장초 중 발췌

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남긴 기록들에서 그 전투가 어떻게 서술되어 있을까요?
8425 2017-04-07 22:52:39 1
계속해서 백병전만 했다고 주장하는 걸로 몰고 가시네요. [새창]
2017/04/07 21:41:35
근대적인 함포전을 부정한다 = 백병전만이 있었다는건 아닙니다, 몇번이나 답변드립니다만 해당 전쟁의 당사자인 이순신 장군도 그러한 근대적인 포병 전술을 고수한바 없습니다, 그는 조선 수군의 기틀 위에서 그 것을 매우 잘 활용하신 것 뿐이에요;

가령 몇 번이나 언급한 내용이지만 기록을 보자면

한산도 대첩의 전과를 올린 장계에는 바다 가운데 나와 장수들에게 명하여 학익진을 벌려 각종 총통을 각각 쏘아 적선 2~3척을 격침시키니 여러척의 일본군이 그 사기가 떨어져 일시에 도망가려 하여 이에 흥분한 장수들이 승세를 타고 흥분하며 앞다투어 돌격하여 화살과 탄환을 쏘아 적선을 분멸하고 적을 해치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포 당항포 등의 승전을 기록한 장계에는 당항포에 도착했더니 왜선 한척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여 접근한 뒤' 총통을 쏘고 질려통을 비릇한 활과 철환등 개인화기를 투척하여 적을 살상하며 이후 접선을 위해 요구금 즉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내었더니 반수 이상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을 적고 있습니다.

자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어느 나라 이순신 장군일까요? 사상자가 적다고 무조건 백병전은 없었다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정작 당사자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장해서는 안되죠;
8424 2017-04-07 18:17:59 2
임진왜란때 조선이 털린 이유 [새창]
2017/04/05 19:42:14
1. 학익진의 아군간 함선의 진형을 유지한채 속도를 맞추기도 어렵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 아래에 다수의 아군이 뭉쳐있는 진형 내의 사선 안에 아군을 둬서도 안되는 문제는 둘째치고 측면 화력이 한 쪽만 사용되어 재 장전을 비릇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실제 화력 투사라는 문제에 있어 매우 부적절한게 사실입니다,

2. 수조규식을 비릇하여 각종 사료등에 따라 확인된 조선 수군의 화포간 사거리는 적의 사거리 밖에서 쏠정도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8423 2017-04-07 17:52:00 3/8
임진왜란때 조선이 털린 이유 [새창]
2017/04/05 19:42:14
위력자체를 비하하는게 아니라 수조규식을 비릇하여 당대의 각종 기록들 심지어 어명에 이르기까지 언급하시는 범선의 시대에 일상화된 함포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요;
8422 2017-04-07 17:50:24 2/4
임진왜란때 조선이 털린 이유 [새창]
2017/04/05 19:42:14
한산도 대첩의 전과를 올린 장계에는 바다 가운데 나와 장수들에게 명하여 학익진을 벌려 각종 총통을 각각 쏘아 적선 2~3척을 격침시키니 여러척의 일본군이 그 사기가 떨어져 일시에 도망가려 하여 이에 흥분한 장수들이 승세를 타고 흥분하며 앞다투어 돌격하여 화살과 탄환을 쏘아 적선을 분멸하고 적을 해치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포 당항포 등의 승전을 기록한 장계에는 당항포에 도착했더니 왜선 한척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여 접근한 뒤' 총통을 쏘고 질려통을 비릇한 활과 철환등 개인화기를 투척하여 적을 살상하며 이후 접선을 위해 요구금 즉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내었더니 반수 이상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을 적고 있습니다.

함포전만으로 해전을 치루었다라고 하는데 그럼 이 기록을 남긴 이순신은 누구일까요.
8421 2017-04-07 17:28:52 0
7년전쟁 당시 조선수군의 함포운영과 관련해서 [새창]
2017/04/06 22:27:42
누구 장단에 맞출것도 무엇도 없습니다, 글을 읽어보세요,

중략

'그렇다면 만약 일정 거리 이상 접근했을 때, 특히 완전히 배가 붙는 접현 상태에서는 총통의 사각 제한 때문에 사격 불능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때는 질려포통 등 손으로 투척할 수 있는 화약무기나 활 등 일반적인 투사무기를 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배가 접현했다는 말이 무슨말일까요,
8420 2017-04-07 17:25:30 0
아니 님들 왜 100m 들고와서 근접전 햇다고 우기세요 [새창]
2017/04/07 17:16:36
죄송한데 허수아비 치고 계시는게, 지금 여기서 백병전만이 존재했다라고 본문과 같이 주장하시는분 안계십니다, 다시한번 답글과 아랫글들을 읽어보세요.

그리고 명중률을 위해서 사거리가 반토막 난건 아닙니다, 일단 포가 원하는 위치에 제대로 날아가야 그런 명중률을 찾을수 있지요;
8419 2017-04-07 17:22:40 1
임진왜란때 조선이 털린 이유 [새창]
2017/04/05 19:42:14
야마토급과 판옥선은 화포 구경을 비릇한 거의 모든 부분 심지이 설게사상에 이르기까지 차이를 보이지요, 단순 숫자로 비교할 내용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덧붙여서 사통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노선의 시대이던 당시에 그런게 있던가요?

아 물론 대충 맞춰서 쏘고 한다고 하십니다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른 사거리 제한이라던가 포각의 유지등 체계적인 훈련체계와 규정정도는 있습니다;
8418 2017-04-07 17:18:55 0
실전에서 조선시대 수군 함재 화포의 사거리 규정 [새창]
2017/04/06 22:02:20
거기다 덧붙이자면 본문의 글쓴이께서 화포의 사용을 부인하셨던가요; 지난 글에서도 화포전보단 육박전이 주류였다는 말씀을 하셨고 이 글에서는 제목 그대로 화포 사용건을 말씀하시는것일텐데요
8417 2017-04-07 17:16:58 0
실전에서 조선시대 수군 함재 화포의 사거리 규정 [새창]
2017/04/06 22:02:20
백병전이라는게 넒은 허허벌판 공터에서 싸우는 것만을 의미하는건 아닙니다, 체급의 차이라는 것은 투입할수 있는 병력의 수를 다르게 만들뿐만 이니라 상대에게 공선전과 같은 불리한 상황을 강요하게 만들지요;
8416 2017-04-07 17:10:39 5
대포에 강선이 새겨지고 작렬탄이 적극적으로 쓰이기 전까지 [새창]
2017/04/07 16:41:21
덧붙이자면 씁슬한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조선의 화약 생산량으로는 많은 분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화력전을 뒷받침 하기 어렵죠,

물론 이순신 장군이나 여타 기록상으로도 그러한 중장거리 화력전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전투는 거론된바 없지만요;
8415 2017-04-07 10:51:34 14
임진왜란때 조선이 털린 이유 [새창]
2017/04/05 19:42:14
다른 분이 말씀하신 답글에 더하자면 안택선의 내구성 이야기는 당파전술의 오류 등에서 비릇된 낭설로 실제 안택선의 내구성이 그 정도라면 바다를 건너올수도 없을겁니다; 쇠못을 쓴게 문제라면 대항해시대 신대륙은 어떻게 갔을까요;
8414 2017-04-07 00:00:59 0
7년전쟁 당시 조선수군의 함포운영과 관련해서 [새창]
2017/04/06 22:27:42
답글을 다는 사이에 말씀을 이어주셨는데 당시의 모든 레퍼런스/기록 등을 무시한다고 치더라도 단지 화포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수 있는는지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지 한번쯤 정리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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