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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2 2015-06-08 23:39:05 1
동아사이언스 홍산문명 [새창]
2015/06/08 18:46:42
요약하자면 아직까지 체질 인류학이나 고고학적 등 여러 검토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와 홍산 문화는 유사성만 존재하지 관련성은 그냥 남남인 수준이라는것이지요;
4361 2015-06-08 23:30:15 1
동아사이언스 홍산문명 [새창]
2015/06/08 18:46:42
지난 관련 글에서 작성한 내용을 가져와 보자면 문제는 이러한 유물들로 유사성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어쨌거나 우리와 같은 도구를 쓴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들을 우리 민족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호간의 관계성을 입증하는 것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하가점 상층 문화일때는 산융이나 선비 거란과 같은 유목 민족들의 터전이었고 하가점 하층 문화일때는 정주민족이던 이 들의 터전이었는데 이 들과 한국사를 연계시키기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이 이 지역에 한때나마 거주하며 활동했음을 입증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인데 일단 문헌 사학쪽으로는 불가능한게 당연한게 문헌이 전무하지요.

그렇다면 고고학계에서 검토를 해야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관계성을 입증하는 문제에서 신석기 단계와 청동기 초기 단계에서 이미 이 들 요서와 요동 및 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는 상당한 터라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문명이 영위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것은 현 단계에서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유전자 인류학과 체질 인류학 등을 통해 같은 계통의 조상을 두었는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수 있고, 인구이동과 문화 전파라는 고고학적 난제를 배제할수 있기때문에 이 유전자 인류학과 체질인류학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해볼수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의 조상뻘되는 민족은 요서지역에서 홍산 문화를 건설했던 집단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서지역에서 출토된 인골은 고동북 유형 그리고 고화북 유형 끝으로 고몽고고원유형의 순서로 고동북유형으로 지칭되는 집단중에서 한국인의 선조뻘되는 집단과 연계시켜 볼만한게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요서의 홍산문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체질인류학 연구를 통해볼때 mtDNA에 따른 지역별 차이보다는 Y염색체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과 연구 표본이 지극히 부족한 점과 유전자 인류학의 유전자 채취 문제 등을 생각해본다면 더 나아갈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우리와 관련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뿐이지 이들이 한국인과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러한 홍산문명은 황화 문명과의 연관성부터 신러 문화나 자오바오거우 문화등에서 볼수 있듯이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아직까지 연구 성과는 갑론 을박인게 사실입니다.
4360 2015-06-08 23:27:41 1
중전과 후궁하면 라이벌 혹은 암투이미지가 강한데요 [새창]
2015/06/08 23:06:22
친해 지기 참 어려운게 물론 왕실에서는 가지기 어려운 남녀 관계의 측면 도 존재 하기는 합니다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TO가 매우 한정적인데 반하여 지원자는 차고 넘치다 보니 어쩔수 없이 경쟁이 강제되는 측면이 있기에 내명부의 상하 관계가 매우 경직된 측면이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가령 시작점인 후궁이라는 것을 이전의 작성한 글에서 발췌했습니다만 간략히 보자면 승은 후궁은 말 그대로 왕의 승은을 입어 후궁의 자리에 오른 것을 말하며 간택 후궁은 대왕대비나 대비께서 명문가의 여식을 골라 후궁으로 올리신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승진 속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벌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궁녀가 왕에게 승은을 입는다고 바로 후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승은을 입으면 품계에 상관없이 특별직인 정 5품 승은 상궁이 되며 여기서 회임을 하거나 왕의 총애가 두텁거나 왕실에 행사 등 특별할 사정이 벌어질때 비로소 종4품 숙원의 품계를 받고 후궁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상기 조건이 충족안된다면 영원히 승은 상궁으로 남을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후궁이 되었다 해서 승진이 고속도로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더이상 회임이 불가능하거나 왕의 사랑이 식으면 종4품 숙원으로 쭈욱 남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잦은 승진은 신료들의 반대를 뜷고 넘어가야 했는데 이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급감한 후궁첩지의 남발을 통해 알아볼수 있습니다, 빈이라는게 참 되기 힘든 것이지요.

반대로 간택후궁은 그 집안 만큼이나 저 미천한 천얼들과는 출발선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보통 승은을 입기 이전에 종 3품 숙용에서 집안이 괜찮으면 종 2품 숙의로 시작합니다, 왕자, 공주 한 둘만 낳으면 빈이 되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지요.

이러다 보니 참 그 관계가 인간적이기 어렵지 않았을까합니다.;
4359 2015-06-08 22:39:12 0
개인적으로 손을 본 2차 연명상소문 수정안 [새창]
2015/06/07 03:50:51
한사군 재한반도설에 관한 내용을 읽으며 내려와 보세요, 식민사관이 어떤거다 라는 것은 다른 공지의 내용에도 포함되어 있으니 읽어보시고 말입니다, 그리고 제발 말입니다, 본인이 비판하는 주장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셔야지 무슨 이야기가 되지, 지금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논점 이탈하시면 어떻합니까?

끝으로 본인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하면서 말을 왜곡하다니요, 우리가 말하는게 식민 사관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그 것을 이용한 유사 역사학의 트롤링입니까? 이러면 정말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지금 뭘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도 제대로 모른 다는 말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또한 첫 답글에 뭐라고 하셨지요? 네 이병도를 식민사학자로 비난하는 것은 이는 식민사학의 문제이기에 제외 되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말을 고스란히 돌려드리지요, 본인이 한 말이니 수습하기 바랍니다.
4357 2015-06-08 22:02:48 0
개인적으로 손을 본 2차 연명상소문 수정안 [새창]
2015/06/07 03:50:51
이 게시판에서 식민 사학이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이거나 하는 것을 지금 공지 혹은 게시판에서 문제로 삼나요? 아니면 그 것이 대체 뭐가 문제가 될까요?
이병도는 식민 사학자 라는 명제 아래에 벌어지는 온 갖 트롤링을 이야기 하자고 하는데, 식민 사학이 무엇인지를 짚어야 합니까?

상기 답글에서 병도를 식민사학자로 비난하는 것은 이는 식민사학의 문제이기에 제외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대체 이병도의 식민 사학적인 업적이 무엇이길래 유사 역사란에서 제하자고 하십니까? 그를 식민 사학자라고 식민사관에 점철된 왜곡된 역사를 만든 곡학아세의 전형이라 비난하는 이들이 또 누가 있나요?

오히려 지금 식민 사학의 정의를 제시하셔야 할 분은 해가람님 같습니다, 그가 식민사학자가 맞기에 앞서 제시한 공지의 수정 요청이 정당하시다는걸 입증하셔야지 그러한 공지에 동의하는 상대에게 그럼 네가 생각하는 식민 사학이 뭐냐 라고 반문하실 문제가 아니지요.
4356 2015-06-08 21:58:36 0
개인적으로 손을 본 2차 연명상소문 수정안 [새창]
2015/06/07 03:50:51
이 문제에 관하여 관심도 무엇도 없으시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이제는 말 바꾸기를 우려한다고 논지를 잡으셨는데, 식민 사학에 대하여 말 바꿀게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말하는 것이 식민 사학에 관한 정의 내지는 이해 관계입니까, 아니면 유사 역사학에서 이병도 교수에 대하여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는 근거가 전무한 식민 사학적 업적을 이룬 이병도입니까? 여기에서 말 바꿀게 뭐가 있지요?

유사 역사학에서 말하는 식민 사학이란 통념적인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 하는 역사관을 넘어 자신들의 주장이 아닌 모든 것을 의미하는 바 그러한 반복되는 주장과 그 것을 수반한 트롤링에 지쳐 위와 같은 가이드 혹은 공지가 생긴바 여기에서 말 바꿀게 대체 무엇입니까?

뭘 분명하게 짚자는 것인가요? 우리가 말하는게 식민 사관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그 것을 이용한 유사 역사학의 트롤링입니까? 왜 이병도 교수의 이야기를 할때 식민 사학이 꼭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의 식민 사학적 업적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지껏 제시된게 있기는 한건가요?

분명하게 짚자고 하자는데 대체 뭘 말하고자 하시는 건지요?
4355 2015-06-08 20:33:52 0
개인적으로 손을 본 2차 연명상소문 수정안 [새창]
2015/06/07 03:50:51
지금 우리가 논하는게 유사 역사학에서 말하는 식민사학 그러니까 이병도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에 관한 이야기 였나요, 아니면 식민 사학의 단어적 정의를 논하는 거였나요?
4354 2015-06-08 18:54:22 13
동아사이언스 홍산문명 [새창]
2015/06/08 18:46:42
상기 답글의 사진은 카나리아 레슬링입니다, 겉보기는 우리네 씨름과 비슷합니다만 그러한 비슷 비슷한 운동이 십 수가지도 넘는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나라의 씨름이 세계로 전파되어 자리 잡은 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홍산 문명과 우리의 그 것에 유사점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이상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지요.
4353 2015-06-08 18:52:45 5
동아사이언스 홍산문명 [새창]
2015/06/08 18:46:42

아무리 좋게 봐줘도 유사성 이상의 진척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요;
4352 2015-06-08 18:23:00 0
개인적으로 손을 본 2차 연명상소문 수정안 [새창]
2015/06/07 03:50:51
그러니까 저는 공지에서 언급하는 정의에 동의한다니까요, 그런데 단어의 정의에 대하여 무슨 말을 더 하라는 것이며, 어디가 어떻게 잘못됬다는 겁니까?

설마 공지를 읽기 싫으셔서 대신 읽어달라는 것은 아니실테고 쓸데없는 논점 이탈 하지 마시고 집중이나 좀 해주시지요.
4350 2015-06-08 17:12:08 1
18세기 유럽인들의 인식 [새창]
2015/06/07 21:41:03
http://nl.wikipedia.org/wiki/V%C3%B6lkertafel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지고 돌아다니던 자료 이며, 세관에 걸려 있던 자료는 절대 아닙니다.;
4349 2015-06-08 16:59:47 0
개인적으로 손을 본 2차 연명상소문 수정안 [새창]
2015/06/07 03:50:51
다시 강조합니다만 논점을 확실하게 하셔야 그 대상의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가 주제로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이 역사 게시판의 공지, 가이드 라인에서의 시각입니다.

제가 유사 역사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주제들의 단어 정의를 어떻게 잡고 있느냐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역사 게시판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트롤링의 객체인 유사 역사학의 정의를 말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정의에 대하여 수긍하는 저와 다르게 해가람님께서는 이견이 존재하시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므로, 제 정의를 물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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