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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3 2016-01-14 21:12:43 4
쉽게 민족혼과 사학정신을 말하면서 사람들을 우롱하고 현혹한다. [새창]
2016/01/14 20:24:05
이용시간이 짧아 추천을 못드립니다만 이제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도 베오베는 별반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올라가서 이렇게 논쟁이 다시 가열화 되고 있습니다만 참 그렇지요, 진짜 뭔가 굉장한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역사라는 주제를 즐겁게 이야기하고 즐기고 뭐 그런게 이렇게 힘든건지 말입니다,
5832 2016-01-14 21:01:23 1
게시판 폐쇄? [새창]
2016/01/14 15:21:59
1. 맞습니다, 패배할지 승리할 지 그 누구가 판단을 할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네 패배하였지요 그러한 결과를 모두 알고 있는 입장에서 당시 동학 농민 운동은 지도층의 무능과 봉건 질서에 대한 저항 의식 미비 등 여러 문제를 끌어 안고 제대로된 개혁을 하지 못한채 점차 시류에 끌려 일본의 야욕을 돕는 결과를 낫게 되었으며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볼때 너무나 쉽게 나라를 내어준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과론적인 측면에서만 할수 있는 분석이지요.

2. 역시나 결과를 알고 있기에 나올수 있는 이야기라고 보입니다, 아니 알고 있어야 나오는 이야기 이지요, 일제에 무저항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아니고 이후의 독립 운동을 폄하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이후의 결과를 놓고 봤을때 화자가 보기에 당시 상황은 저렇게 흘러갔다는 겁니다,

3. 자주 독립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더 값어치 있게 평가해야 한다는 말씀이 틀린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언급하시는 일련의 답글들 역시 그러한 노력을 폄하하는 건 결코 아니라고 보여요, 이건 앞 뒤 글로 잇도록 하겠습니다.

4. 네 결과론적으로 일본이 나쁜짓, 착취를 했으니까 그럴리 없지요, 말씀 하신 그대로입니다, 지금 화자의 가정으로 볼때 민중들의 기대에 이율배반적으로 응대한 일본의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결코 일본의 상황을 옹호하는 답글은 아니지요.

5. 저랑 확실하게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저는 '청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잡습니다 이후 조선의 지배층은 좀더 일본에 의지하여 유착합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더커졌고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해옵니다 결과는 의도와는 정반대 부정적으로 나타납니다' 라는 말은 앞서 작성된 일련의 답글로 놓고 볼때 그 취지와는 다르게 시대적 상황과 여러 문제들이 일제의 야욕을 더 가속화 시켰다 라고 읽힙니다, 즉 동학 농민 운동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동학 농민 운동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요, 그리고 갑오년 이후의 김홍집, 박영효의 연립 내각이 있었지요, 문제는 이 연립 내각의 다소 성급한 개혁이 이후의 삼국 간섭을 맞이하며 친러파의 득세를 가져왔다는 것일겁니다.

6-7. 앞서 이런 표현이 있었지요,

당시 열강들은 동학난이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만들어 들어왔을 놈들입니다
제대로 대응못한 지도층을 탓해야지 이기지도 못할거 맞서 싸워서 진 민초들이 문제라는 식의 해석이 정녕 옳은것이라고요?

여기에 대하여 동조하시는 분과 답글을 달기를

동학농민운동이 아니라도 일본이 조선에 영향권을 행사할 명분은 다른걸로 찾아을겁니다. 단지 일본의 명분으로 이용되어을뿐이고
일본은 메이지유신이후 팽창주의로 인한 일들을 동학농민운동 탓하기 힘듭니다 무수한 과정에서 한부분일뿐이죠

동학난으로까지 말을 줄이시면 안되고요 열강들이 어떡해서든 들어온건 분명합니다 어찌됐건 이럴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너무 무저항으로 일본에 합병돼버려서 국제사회에 일제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준 모습입니다

외세가 들어온걸 이야기하면 강화도조약부터 이야기하시지요 강화도조약 체결로 한국 밥이로구나 먹을만하구나 기어들어왔으니??

인정합니다 우리나라로서 솔직히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와서 우리나라도 다른나라의 민중혁명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고 정신승리할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 역시 저와는 분명하게 다르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답이 없는 현실속에서 다른 나라의 민중 혁명과 같은 동학 농민 운동이라도 있었기에 그래도 목소리를 낼수 있는게 아니냐고 읽힙니다, 즉 당시에 동학 농민 운동 이외의 제대로 된 표현을 빌자면 민중운동이나 민중의 궐기의 부재가 아쉽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재가 일본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준 모습을 가지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 인식을 놓고 볼때 저는 폄하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만약 동학 농민 운동의 취지를 두고 이야기 했다면 저도 마찬가지로 분개를 했을것입니다만 결과적으로 볼때 그 취지는 분명 어디에서도 부정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해석에 무조건 동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러한 해석이 구태여 폄하로 치부될 이유가 있는지는 저로서는 의문이지요;
5831 2016-01-14 20:27:44 1/4
게시판 폐쇄? [새창]
2016/01/14 15:21:59
닉네임 언급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김셋님.. 조언 하기 앞서 글이나 읽고 오세요, 누구보고 정신 차리네 마네 하기에 앞서 본인이 하는 주장이 뭔지는 알아야지 어디 먹히지도 않을 떡밥을 던집니까, 지저분하게

친일파박살님.. 나오는데요? 왜 안나올까요? 여기서 민족을 부르짖는다고 무조건 파시스트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동학을 폄하하는 사람은 누구고 합리적 수출을 말하는 사람은 또 누군가요? 허수아비는 좀 그만치시지요, 허수아비도 참 괴롭겠습니다.

수출에 있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자본주의적 수탈 과정을 조명하는게 뉴라이트의 주장이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리고 제 주장은 읽어보신게 맞나요? 수탈을 부정하기는 누가 부정합니까? 수출은 반드시 정당한 노동의 댓가 위에만 정립된다며 수탈을 부정하기에 수출과 수탈은 같이 쓰일수 있다는 주장을 했을텐데요? 그리고 그 자본주의적 수탈 과정도 설명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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