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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5 1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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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와서 여러분의 댓글들을 잘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첫 번째는 그럼 대신들의 주장대로 항복했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최우를 이완용으로 만들어야 하는 문제입니까? 이완용이 왜 친일파가 됫는지 아십니까? 지딴에는 한국이 저항하면 일본이 쳐들어올 것이고 일본의 막강한 군사력에 한국 민중들의 피해가 커질 께 뻔하니 한 것입니다. 민중의 피해가 문제라고 항복하는거면 최우가 이완용이 됩니다.
둘째는 지나치게 결과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신정권이 아무것도 안했다고요? 팔만대장경은 심심해서 만들었답니까? 물론, 현대인에 눈에는 팔만대장경이나 깍고있네 이 잉여들, 그돈으로 무기나 사지. 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우가 그런 생각을 한 건 고려 시대입니다. 합리주의적 사고보다는 종교에 의존하는 성격이 강한 시대죠. 그들에게 종교는 진리이고 몽골이 침입은 부처가 벌을 주러 온 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그때의 일을 평가하면 대부분 안 됩니다. 팔만대장경은 그들이 할 수 잇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셋째는 군사적으로도 많은 시도를 햇다는 것입니다. 별초군을 창설한 것도 그때고 충실도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을 피난시키는 입보책을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몽골에게 공을 세운 고을은 상과 승격을 내리기도 했죠. 아무것도 안 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입니다
넷째는 백성들도 몽골에 항복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민병군의 저항이나, 고려가 개경으로 돌아왔을때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고 여기에 개경과 밀양의 관노와 농민들이 호응한 것은 이걸 잘 말해 줍니다..
저는 최우의 몽골 항쟁이 성공적이라고는 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실패했죠. 하지만 시도가 나쁘다는 입장엔 전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