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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3: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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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은 양평에 살던 시절 14세의 나이로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갑니다.
화서는 최익현에게 '면암'(勉菴)이란 호를 지어 주고 '낙경민직'(洛敬閩直)이란 글을 주면서 학문을 권면합니다.
면암(勉菴)은 ‘힘쓰는 사람’이라는 호를 잊지 않았고, 15세에 화서가 직접 글씨를 써서 내려준 ‘낙경민직(洛敬閩直)’이라는
네 글자를 평생토록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고 합니다.
낙경민직(洛敬閩直)이란
중국의 송나라 때, ‘경(敬)’을 크게 강조한 정자(程子)의 사상과 ‘직(直)’을 주장한 주자(朱子)의 사상을 지키며 살라는 뜻입니다.
낙읍(洛邑)은 정이(程頤=程子)가 살았던 곳이고, 민(閩)은 주희(朱熹=朱子)가 살던 곳이죠.
그래서 낙민(洛閩)의 낙(洛)은 정이(程頤), 민(閩)은 주희(朱熹)를 말합니다.
정이(程頤)(생몰년1033 - 1107)는 중국 북송(北宋) 때의 성리학자(性理學者)로 '북송오자(北宋五子)' 중에 한 사람이다.
자(字)는 정숙(正叔)이고 이천백(伊川伯)에 봉해졌으므로 이천선생(伊川先生)으로 불리었다. 하남(河南) 낙양(洛陽) 출신이다.
정호(程顥; 程明道)의 아우로서 정호와 함께 이정(二程), 또는 이정자(二程子)라 불리며,
오랜 기간 낙양에서 강학하였으므로 그들의 학문을 '낙학(洛學)'이라고 한다.
주희(朱熹)(생몰년 1130 - 1200)는 중국 남송(南宋) 때의 유학자다. 성리학(性理學)의 집대성자로서 주자학의 창시자이다.
북송(北宋)의 제유(諸儒), 즉 주돈이(周敦頤), 소옹(邵雍),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頤) 등의 학설을 계승 종합하는 한편,
동시대의 불교 도교 이론까지 섭렵하여 방대한 사상체계를 창시하였다.
자(字)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號)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노인(雲谷老人)·창주병수(滄洲病叟)․둔옹(遯翁)이다.
본관은 휘주(徽州; 舊名 新安) 婺源縣(무원현) 영평향(永平鄕) 송암리(松巖里)이며, 복건성(福建省) 우계현(尤溪縣) 출신이다.
존칭하여 주자(朱子)라고 한다.
경(敬)은 경서(經書)의 덕목 중 하나.
마음을 오직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
정이(程頤)는 경(敬)은 사특함을 막는 도이고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고 하였다.
주일은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이요, 무적은 다른 일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경은 마음을 어느 곳에도 가지 않게 하여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서 언제나 깨어 있는
수양방법이라 할 수 있다.
주희는 경이란 성인의 학문을 시종일관하게 하는 것이며 격물치지로부터 치국평천하까지 경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학문에서 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직(直)은 공자·맹자·주희(朱熹)로 이어지는 유학 사상의 계보에 있어서 학문의 요결(要訣)이 되는 주요 개념.
통상 ‘곧음’으로 옮겨지며, 사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과 행위를 뜻한다.
이처럼 선진시대 유가의 경전에 직에 대한 의미 깊은 언급들이 있지만,
이를 유학 사상의 핵심 개념으로 선명히 부각시킨 것은 송나라의 주희라고 할 수 있다.
주희는 임종을 앞두고 문인 자제들에게 평생 학문의 요령을 전수하여 이르기를,
“성인이 만사에 대응하는 원리나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은 오직 직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주희의 유언에 따르면, 인도(人道)도 천도(天道)도 오직 직일 따름이니 직이야 말로 천인합일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주희의 생각은 후일 조선의 송시열(宋時烈)에게로 이어졌다.
송시열은 “주자가 집대성한 바는 그 요령이 다만 직, 한 글자에 있다.”,
“직, 한 글자야말로 공자·맹자·주자 세 성인의 서로 전한 심법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직을 ≪시경≫의 ‘사무사(思無邪)’, ≪논어≫의 ‘인(仁)’, ≪중용≫의 ‘성(誠)’, ≪대학≫의 ‘경(敬)’과 같다고 함으로써,
직을 인·성·경 등 유학의 전통적 주요 개념과 나란히 그 중요성을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