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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08: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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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섬' 군함도 생존자 최장섭 할아버지(90)가 영화 '군함도'를 관람한 뒤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표출했다.
최장섭 할아버지는 지난 26일 오후 용산 CGV에서
생존자 이인우 할아버지(94), 강제 징용 희생자 유족, 김부경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영화 '군함도'를 관람했다.
이날 최 할아버지는 "사면이 바다인 군함도(하시마 섬)에서 창살 없는 지옥 생활을 3년 10개월이나 했다"면서
"속옷만 입고 탄광 밑바닥에서 작업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혹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일본으로부터 아직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고, 여기에 대한 보상은 누구에게 받아야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강제 징용 역사를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터뜨렸다.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군함도에서 무려 3년 10개월 동안이나 사투의 나날을 보냈던 최장섭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스토리펀딩'에 따르면 최장섭 할아버지는 16살이던 1943년, '지옥의 섬' 군함도(하시마 섬)에 도착했다.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하고 군함도에 온 16살의 어린 소년(최 할아버지)은 바로 탄광 노동자가 되었고
마치 노예처럼 일하고 또 일했다.
당시 최 할아버지가 주로 했던 일은 탄을 캐고 나면 그 자리를 메우는 '주땡'.
탄광에서 하는 일 중 가장 위험한 일이었던 주땡을 담당한 최 할아버지는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지하 1천m 탄광에서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일했다.
최 할아버지는 이런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갖은 핍박과 고문만 당했을 뿐.
최 할아버지는 "밥이라고 해도 콩깻묵 한 덩어리가 전부였고, 탄가루가 묻어 있었다"며
"겨울에도 여름에도 '훈도시(일본의 전통적인 남성용 속옷)'만 입고 일했다.
쉬는 날은 없었고, 쉬는 시간에도 강제로 학교에 가서 운동 연습부터 대창으로 사람을 찌르는 연습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방이 바다여서 도망가기도 어려웠다.
만약 도망을 갔더라도 육지에서 붙잡혀 끔찍한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군함도는 조선인들에게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포로가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유독 조선인들에게만 가혹했고, 이 모습은 '악마'와도 같았다.
그리고 악마의 억압 속에 많은 조선인들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최 할아버지는 "지금도 일본 역사를 들으면 짓밟아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등록을 해서 '군함도'라는 이름을 멋대로 붙이고 그곳의 진실을 없애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