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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01: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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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히려 고전의 영문번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많이 배워갑니다!
Phil님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과연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참 얕게 공부한 것 같아 부끄럽네요.ㅠ
그렇지만 제가 저의 주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禍의 용례입니다. 저는 禍가 타동사로써 '재앙으로 여기게 만들다' 라고 까지 의미가 확장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맹자 본문에 나오는 禍의 용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今에 國家閒暇어든 及是時하여 般樂怠敖하나니 是는 自求禍也니라(공손추 상)
禍福이 無不自己求之者니라(공손추 상)
言 君子當見幾而作이니 禍已迫이면 則不能去矣니라(이루 하)
昔에 沈猶有負芻之禍어늘 從先生者七十人이 未有與焉이라하니라(이루 하)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는 必子之言夫인저(고자 상)
이 외에도, 禍는 시경에 총 4회 등장하는데, 어디에서도 禍를 '재앙으로 여기게 만들다'로 까지 탄력적으로 해석한 구분이 없습니다.(논어에서는 본문에서 사용된 사례가 없습니다. 이건 처음 알았네요.)
제 생각으로는 禍라는 글자가 당시에는 제한적으로 쓰인 글자라, 용어의 활용에서 꽤 비탄력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둘째로는 전통 해석의 존중입니다. 고리타분하게 들릴 것 같지만, 전통적인 해석의 존중은 한국한문학에서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맹자>>라는 텍스트는 <<맹자>>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옛날 文人들이 어떤 식의 사유체계를 가지고, 어떻게 글을 이해하며 또 썼느냐에 대한 기본 지침서로서 활용됩니다. 이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번역은 교정청에서 발간한 맹자언해 및 그 토입니다.(율곡언해로 공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율곡언해만으로 공부하시는 분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이 번역이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닐 수는 있더라도, 한국한문학을 읽는 방법으로써의 번역으로는 '단 하나의 정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한문학과에 처음 들어오는 학우들을 위해 쓴 글이라 그 번역은 기본적으로 교정청의 언해 및 그 언해를 충실히 반영한 성백효 선생님의 번역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Phil님의 글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대답은 崔文斌의 <<孟子>>詞類硏究, 또는 신석 한문대계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고향에 내려온터라 직접 찾아보지 못하고 말씀만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