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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1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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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징병제에 관해서, 거칠게 말하면 '여성도 병역의 의무를 지자!' 는 담론이 나오기 시작한건 사실 꽤 오래전 일입니다.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해 헌법 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게 1999 년입니다. 그렇다면 논쟁은 그 이전부터 일어났었다 봐야겠죠.
무려 20 년 전 일입니다.
여군 부사관 제도는 6·25 시절부터 존재했고 사관학교가 개방된 것 역시 1990 년대 후반으로 벌써 20 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여대에서 ROTC 학군단을 뽑기 시작한 것도 2011 년 부터이니 6 년이 지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적어도 그 사이에 뭐라도 의견 교환이 일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동안 여성 징병제 담론은 특정한 이슈가 생겼을때 확 불타올랐다가 이내 급속도로 사그라지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군 가산점 폐지 논란이 일었을 때를 담론 형성 초기라 본다면,
그때는 '남자가 쪼잔하게' , '꼭 그렇게 여자를 군대 보내고 싶냐' 는 말로 일축됐었습니다.
양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시기였고,
심지어 남성들은 '여자도 군대 가야한다' 는 말을 하는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으나, 여대에 ROTC 학군단을 창설하는 이슈가 떠오르기 전까지 담론은 여전히 조용히 산발적으로만 일어났습니다.
'여자가 학군단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뭐냐!' 는 논조와 관련해서 또다시 담론이 형성되었으나,
어쩐지 '여전히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부분이 많다' 는 주장에 힘을 얻은데 대한 반작용일까요?
또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조용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분들은 말씀하십니다.
'갑자기 나보고 군대 가라고 하면 당황하는게 당연한것 아닌가?' 라고 말이죠.
나름대로 최소 20 년 가량의 역사를 가진 담론이, 그것도 꽤나 민감한 부분일진대 어찌하여 누군가에게는 갑자기 닥친 얘기가 된걸까요?
더욱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마치 터부를 다루듯이 다들 쉬쉬해왔고,
가끔 담론이 일어났어도 그것이 유지되도록 지속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지고 화두를 제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냥 자신이 병역을 치뤄야 하는 현실에 좆같아 했을뿐,
딱히 여성 징병제와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 느끼더라도, 이익보다는 불이익이 크다고 생각하여 엄두를 내지 못한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괜한 소리를 했다가 분위기나 깨고 평판만 안좋아질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가 이에 속합니다.
여성의 보편적인 입장은 제가 쉬이 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남성과 마찬가지로 그냥 생각이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문제 의식은 커녕, 거부감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으리라 봅니다.
책임은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입을 닫고 있었던 두 세력에 있다고 봅니다.
여성단체와 정치인들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국방의 의무' 를 가지고 이익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여성단체는 자신들이 가열차게 자신들이 마땅히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권리를 요구하는 동안,
'국방의 의무' 에 대해 이득볼 게 없다는 계산을 하고 철저히 침묵하고 외면하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심지어 담론이 일어날때마다 주의를 돌리고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약자로서의 입장을 어필하고 발제자들을 양성 평등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자들로 몰아,
상대가 물타기를 시도한다고 비난하는 식의 물타기로 여론을 잠재우는 한편, 본인들의 이익을 얻어냅니다. 영리하죠.
이에 대한 반발로 몇몇 남성단체들이 결성되었지만,
담론에 집중하기는 커녕, 오히려 극단적인 스탠스와 용어 사용으로 분열만 조장한채 자멸하여 오히려 담론을 변질시키는 데 일조를 해버리죠.
정부는 반대 여론이 초래하는 혼란과 유권자의 상실을 우려합니다.
또한, 서민들끼리의 갈등이 자신들의 실책을 가리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몇차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조리함을 괜히 건들였다가는 큰 손해를 볼 것 같고, 건들지 않으면 어느 정도 이득마저 얻을 수 있기에 가장 쉬운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여성 징병제 담론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숫자는, 특히 힘있는 이들 가운데서는 거의 없다는겁니다.
따라서,
모병제, 징병제 폐지, 사병 처우 개선, 예산 확보, 인식 개선, 일정한 수준의 양성 평등 확립 등등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은건 압니다만,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더이상 이 담론을 그때그때 불같이 일어나 사그라들게 만들지 말고,
불씨를 지속적으로 이어가 절대 다수가 인식할 정도의 담론으로 키워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론을 제시하는 쪽에서는 극단적이고 몰상식하고 자극적이기만 한 발언을 지양하는 자세를 키워야 할 것이고,
담론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만, 또 지엽적인 문제에만 반응하지 말고,
무엇보다 듣기 싫다 외면하는 대신에, 또 침묵하는 대신에 지속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