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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04: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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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의 역사의 물적 증거물이 열도에 있지 않은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합니다. 자국민을 상대로, 그리고 자국으로 타국사람을 끌고와 악을 행한 내륙국이 아닌 해외로 뻗어나가 해외에서 악을 행하고 돌아온 해양국가였기 때문에 침략의 물적 증거가 열도에 있지 않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고, 아주 간단합니다. 개작살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독일은 복수심에 물든 까막눈이 소련병사들 수백만과 수많은 국가들의 연합군에 의해 국토가 직접 점령당하고 지도층은 작살남으로써 물리적으로 패배당했습니다. 국민들이 자기나라가 마지막 한평까지 직접 점령당하는걸 지켜봤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아 기존대로 국가의지를 끌고갈 지도층따위는 남아있지 않았으며, 그 점령을 수행한 국가는 단일국가가 아닌 국제법을 끌고와 복잡한 각국의 이해관계까지 접목시킨 연합국이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폭격만 맞다가 지도층이 항복함으로써 국민은 적군이 상륙해 마을들을 점령하는것도 경험하지 못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에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군주의 목소리가 항복선언을 하는걸 들음으로써 전쟁의 종식을 맞이했습니다. 지도층은 여전히 종전 후에도 상당수 살아남아 역사를 포장했으며, 주범인 군주는 군주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고 여전히 숭배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것이 가능했던건 이해관계가 성립했기 때문이고, 이해관계가 성립했어도 이런 일은 인간정서상 일어날 수 없는 흐지부지의 온상이었지만 그럼에도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을 항복시킨것이 수십개 국가가 모인 연합국이 아닌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영연방 국가들이 포함되었다지만 사실상 미-일간의 전쟁이었고 미국이 항복시켰다고 봐야죠.) 미국의 이해관계가 성립했고, 미국이 그렇게 결정했으며, 반대할 다른 승전국들이 없었고, 군주는 면죄부를 받았으며, 지도부는 생존했고, 국민은 적군을 경험한적이 없으며, 살아남은 지도부는 군주를 위시로 역사를 포장했고, 옆나라에서 터진 전쟁은 국민과 다른나라들이 그런 복잡한것에 집중할시간도 없이 정세가 돌아가게 했으며, 점점 잘살게되어가는 일본의 뒷편에선 신나게 포장질을 계속할 수 있었던겁니다. 아직도 일본에는 같은 혈통의 군주가 군주제를 이어나가고 있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못하고 있으며, 당시에 나라를 말아먹은 높으신양반들이 껍질만 바꾸어쓰고 비슷한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이 썩은건 그냥 썩은 바닥을 갈아엎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박살 난적이 없기 때문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