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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8 19: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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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원정전쟁은 규모가 큰 대신 거리가 가깝고, 유럽 전쟁은 규모가 작은 대신 원정 거리가 길죠.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가장 큰 요인들은 병기기술, 국가체제, 항해기술, 그리고 작물의 차이입니다.
먼저 유럽 군대는 강력한 갑옷으로 무장한 숙련병인 기사들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유지비용도 많이 들고 대량으로 양성하기 어려웠지만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했습니다. 때문에 아시아 세력인 튀르크계 제국들과의 전투들을 보면 대게 수만 단위의 적군은 수백의 기사들이 요새에서 수성전으로 막아내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군소 영주들이 가문 사병 양성하듯이 소수의 중갑병들을 보유하던 유럽과 달리 거대 중앙집권 행정국가들이 흔하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만 규모의 관군을 운용했기 때문에 군대 규모는 크지만, 이 대규모 군대를 전문 상비군으로 전부 보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특히 대규모 원정전쟁을 수행할 때는 이들 군대의 구성원 대부분이 농민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무장수준과 훈련수준이 처참한데, 이는 중앙집권화와 국가주의가 부상하던 근대 유럽의 왕국들간 전쟁발전양상과도 유사합니다. 그시기 유럽에서도 누더기 입고 꼬챙이 꼬나진채로 징집된 농민병들이 흔했습니다. 군대가 지나다니는 경로마다 식량약탈당해 쑥대밭만 남는 거지꼴 군대였죠. 대신에 군대규모는 십자군 시대보다 몇배는 커졌습니다.
항해기술의 차이도 있습니다. 중앙대륙 중심으로 내륙국가들이 붙어있는 동아시아와 달리 한가운데 바다가 있는 지중해 문명권은 유럽만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문명도 마찬가지로 무역과 항해술이 발달했습니다. 군대의 이동과 보급도 선박으로 하는데 육로를 통할 때보다 몇배는 효율적입니다. 조선의 경우 조운선을 제외하고는 육로를 통한 조세운반책이 사실상 말라없어졌는데, 호랑이와 산적때따위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운반비용입니다. 수나라의 육로를 통한 고구려침공당시 전체 침공군의 절반 이상이 보급부대였고, 보급부대가 먹어치우는 보급물자가 전투부대에게 돌아갈 양보다 몇배는 많았습니다. 그래서 해로를 통한 별동대 침공을 재시도한겁니다. 십자군 전쟁은 소수정예의 중기갑전력을 해로를 통해 레반트지역으로 파견했기 때문에 거대제국을 군소영주들의 연합따위가 상대할 수 있었던겁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게 밀과 쌀의 작물 특성차이입니다. 쌀은 밀보다 수확량이 훨씬 풍부한 대신에 중량이 많이 나갑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비율상 비교예시를 들면, 한명의 농부가 밀농사를 지어 2명이 먹고살 양을 수확할 수 있다면 그가 쌀농사를 지었을 때는 3, 4명이 먹을 양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0끼를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은 똑같이 100끼를 먹을 수 있는 양의 밀보다 2배의 무게가 나갑니다. 항해술도 발달하지 않고, 발달했다고 해도 원정전쟁에 활용하기 어려운 내륙전쟁양상의 동아시아에서 육로로 부피비 2배 중량의 식량을 대량으로 수송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불가능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화끈하게 말아먹은 예시가 수나라의 고구려침공이구요.) 때문에 동아시아의 대규모 군대는 인접국 침공 수준이 한계고, 십자군전쟁마냥 이세계 문명으로의 장거리원정은 불가능했습니다. 때문에 대규모 관군은 국방용이었고, 원거리 원정작전은 주로 소규모의 정예 기마부대를 활용했습니다. 조선도 여진 상대로 종종 보병을 동원한 대규모 작전을 벌이긴 했지만 성공하는 경우가 적었고, 전투하러간다기보단 마을 태우러 다니는 작업이었습니다. 평시의 전투수행은 정예 기병들이 수행했죠.
결론적으로 동서양의 군대규모의 차이는 단순 국력차이라고 말하기엔 복합적인 이유들이 많으며, 전부 지형, 기후, 문화, 기술에 따른 합리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