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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12: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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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각 글자가 어디에 써도 같은 소리가 나는건 한글의 장점이 맞지만, 한글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은 아닙니다. 한글이 잘 만든 글자라서 가지는 장점들은 다른것들입니다.
"같은글자-같은소리"는 정상적인 표음문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특징입니다. 일본의 가나문자도 각 글자가 어디에 쓰이냐에 상관없이 같은 소리가 나죠. 이건 한글을 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글이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글자이고, 단일언어권에서 고립적으로 보호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알파벳은 왜 그렇지 못하냐하면, 일단 고대문자입니다. 너무 오랜시간 변천을 겪어왔어요. 애초에 누군가 계획적으로 일괄적으로 개발한 문자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마다 소리가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최종형태로 만들고 널리 사용하던 사용주체인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까막눈이 야만인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각자의 나라를 중구난방 세운 후에 수천년간 그 문자를 마음대로 가져다 자기네 언어들을 표기하는데에 사용해왔습니다. 당연히 지역마다 글자를 읽는 방법이 달라지죠.
하지만 한 언어 내에서도 각 글자가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건 다른문제입니다. 로마자는 이것마저 실패했는데, 이건 분명히 한글이 한글 자체의 장점으로 극복했다고 할 수 있죠. 아마 음절마다 글자가 끊기는 형태인것이 원인인듯 합니다. 끝없이 길어지는 단어와 수많은 연음이 없으니 중구난방의 발음 예외사항이 생겨나지 않는거죠.
그러나 이 특징마저도 로마자가 그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 유럽언어에서 로마자는 각 글자가 거의 한글처럼 같은글자-같은소리가 납니다. 굳이 한글의 장점이라고 하기도 뭐한 수준으로 같은글자-같은소리의 예외가 적습니다. 문제는 영어죠. 영어는 로마자사용언어중 글자별 소리예외사항이 가장 많은 언어입니다. 같은글자도 여러소리가 나고 예외가 있으며, 같은소리가 나는 글자도 여럿 있죠.
아마 영어가 수많은 인종, 문화권에 진출해서 깽판치던 대영제국의 언어였던 점이 이 중구난방에 큰 기여를 했을거라고 생각되고, 또 근세에 영국의 어떤 학자가 프랑스뽕빨고 교양있는 영국어 만들겠답시고 영어 글자발음체계를 개판쳐놨다던 이야기도 있더군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건 로마자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자를 사용하는 언어들중 영어가 가지는 문제입니다.
결론을 내면, "같은글자-같은소리"는 한글이란 문자체계자체의 우수성에서 기인하는 특성이 아니고, 우수하지 않은 표음문자라도 조건이 갖춰지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당연한 특성이며, 한글의 진짜 우수성은 다른분야에서 무궁무진하게 있다라는겁니다. 그리고 같은글자-같은소리가 안지켜지는건 로마자가 심각하게 가지는 단점이 아니며, 유독 개판언어인 영어에서만 가지는 단점이므로, 로마자에 대한 한글의 우수성보다는 그냥 로마자사용언어중 영어가 개판쳐놓은 사례가 부각되어지는것 뿐이라는점도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