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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6 08: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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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정이 점점 해체되는게 시대의 트랜드로 여겨지는 세상이긴 한데, 이건 그냥 요즘 트랜드가 그러니까 인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고치고 개선해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에요.
가정이라는 건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서 언제나 항상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전통적 의미에서 유전자가 이어진 혈연 가정이 아니라 할지라도 양부모 양자녀 가정이 되었건 어떤 형태가 되었건 가정은 가정인거고, 어떤 형태로건 가정은 필요해요.
왜냐면 인간도 동물이고 모든 동물은 태어난 후 생존을 위한 본능적 행동양태를 부모에게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모두 누군가의 유전자 정보를 이어받은 친자식이니까요. 인간의 경우에는 극도의 사회성 동물이라 단순히 다른 동물처럼 이거는 먹어도 되는 풀, 저거는 먹으면 안되는 풀, 저거는 조심해야 할 동물, 지금 계절엔 풍족히 먹어둬야 할 계절 이런거 외에도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삶과 다른 인간 개체와의 원활한 소통/상호작용 등등 부모로부터 배워야 할게 수두룩해요. 또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친부모를 여의거나 잃어버린 경우에도 다른 양부모나 사회 시스템이 부모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경우도 많고요.
이 모든 경우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으로 가정의 범주를 넓히고 개념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인 것이지 결코 가정이 해체되어 없어지는게 아닙니다. 가정의 해체라는 것은 ‘전통적 개념의 가정’이 해체된 것이지 가정이란 존재 자체의 상실을 말하는게 아니에요. 가정은 그 개념이 변화하고 넓혀져 가면서라도 항상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합니다. 엄마 아빠가 필요해요. 단순히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이 아니라 단순 보호자의 개념을 초월한 ‘부모’라는 존재로서의 ‘엄마아빠’가 필요해요. 누군가에겐 엄마아빠가 남녀 두명의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남자 두명이거나 여자 두명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한명이 엄마인 동시에 아빠일 수도 있고(편부/편모) 누군가에겐 엄마 아빠가 여러명일 수도 있겠죠(대가족). 아이에게 엄마아빠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렇게 아주 특별한 단어인 겁니다.
부모1, 부모2라는 표기 뒤의 공란에다 이름을 적어넣을 사람이 주로 누가 될지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이 될겁니다. 전통적 개념에서의 “내가 유전자를 반쪽씩 이어받은 한 쌍의 성인 남녀”의 엄마아빠상이 점점 사라진다고 해서 그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란 특별한 단어를 빼앗고 무미건조하며 아이로부터 어떤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운 부모1,2란 단어를 강제로 쥐어주는게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요? 아니면 아이들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엄마, 아빠’란 단어는 그대로 남겨주고 대신 그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이해시켜 주는게 더 올바른 방향일까요?
부모1, 부모2라니... ‘넘버링 붙인 보호자 호칭’이라니 이런건 머리 굵어지고 닳을대로 닳은 우리 어른들이나 무심하게 넘길 수 있을 네이밍이지 아이들에게는 달라요. 전세계 수 많은 언어들에서 부모를 나타내는 호칭은 특별하게 나타납니다. 어머니 아버지, 마더 파더라는 정식 명칭 외에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부르는 호칭을 따로 가지고 있어요. 엄마 아빠, 맘 대디... 여기서 느껴지는게 없나요?
다시 말하지만 가정이란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 변화하고 확장되는 것이지 해체되고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거기에 맞추려면 아이들이 부르는 엄마 아빠란 단어도 그 뜻이 변화되고 확장되어야 할 것이지 단어자체를 지워버리고 부모A, 부모B 이런 건조하고 매마른 단어를 아이들에게 던져주는건 옳지 못한 방향 설정이에요. 참으로 유럽산 PC충들 다운 건조하고 공감능력 떨어지는 네이밍이네요.
또한 엄마, 아빠라는 단어는 전통적 성역할이 그 단어에게 특정 뉘앙스를 씌웠을지는 몰라도 단어 자체로는 양자간 어떤 우열 관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아빠고 엄마는 엄마지 어느 단어가 더 우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부모1, 부모2는 어떻습니까? 부모A, 부모B도 마찬가지에요. 두 단어 사이에 우열관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누가 1번이고 누가 2번이어야 하나요? 누가 A번이고 누가 B번이어야 하죠? 이건 집안에서 짓궂은 농담으로나 할 법한(그리고 어린 아이에게 그닥 좋은 영향도 아니라는 말들이 많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농담을 공문서에서 대놓고, 그것도 아주 딱딱하고 건조하고 엄격한 자세로 아이에게 묻는 겁니다. ‘니 생각에 니 부모 중 1번, 2번을 선택해 순서대로 쓰렴’ 이게 옳은 일인가요? 설령 부모들 간에 서로의 합의로 누가 1번이고 누가 2번일지 경제력, 시간 여유 등등을 고려해 상정해둔다 할지라도 그건 어른의 시각에서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고, 애들한테는 그래서는 안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