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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12: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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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발굴과 조사가 한참 남았다고는 해도 괴베클리 테페의 예를 봤을때 인류의 집단 정착과 종교의 선후 관계에서 종교가 먼저(집단 정착의 원인이 됨)라는 이론도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일단 인류도 다른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원시 혈연 공동체는 이루고 살았었죠. 이런 소규모 혈연 공동체는 인류 외에도 여러 동물들도 갖고 있습니다. 사자들의 무리인 프라이드만 해도 그렇죠. 인류가 동물과는 달리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이런 원시 혈연 공동체를 떠나, 가족이 아닌 전혀 일면식도 없던 타인들이 뭉쳐서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서부터 가능해진 것이죠.
문제는 인류가 굳이 이런 비혈연 거대 공동체를 형성하고 모여 정착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원시 수렵 채집 생활 수준에서는 거대 공동체가 오히려 방해만 됩니다. 수렵, 채집 수준으로는 일정 지역 범위 안에서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 수가 극도로 한정되기 때문이죠. 먹일 입이 늘어나면 수렵과 채집으로는 한계가 생겨 굶어죽는 공동체 구성원이 발생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자연 도태되며 공동체 인원 수가 자동 조절됐을 겁니다. 단순히 수렵 채집 사회만으로는 다른 공동체와 갈등, 전쟁이 벌어져 상대 종족을 노예로 잡아온다 하더라도 먹일 것이 부족해 이내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고 말죠. 그래서 남성은 죽이고 종족 번식에 도움되는 젊은 여성만 끌고 오는 식의 전쟁이 벌어진겁니다. 수렵 경제 수준으로는 노예를 부릴 여력도 안되기에 간혹 부족간 전쟁이 나서 상대 종족을 사로 잡더라도 거대 공동체로의 발전이 이뤄질 수 없었죠.
결국 거대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는 농경이 발달되며 경제 체제가 급변한 후 좁은 영역 안에서 많은 인구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이후에나 가능해진 것입니다.
전통적인 학자들의 견해는 농경 그 자체가 인류로 하여금 거대 공동체로 모일 수 있게 만든 원인이 되었을 거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이고 난 후 잉여 에너지로 계급이 생기고 종교가 발생하고 그런 거란 주장이었죠. 하지만 여기도 의문점은 많이 남습니다. 농경은 생각보다 매우 노동집약적인 산업입니다. 일단 노동력이 많이 모일수록 식량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지 적은 노동력으로 시작하면 효율이 엄청 떨어집니다. 특히나 비료 발명 이전의 원시 농업은 소수 노동력으로 시작하면 채집 수렵보다도 식량 생산 효율이 떨어질 겁니다. 그럼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죠. 일단 일정 규모 이상이 모여야 농업의 효율과 효과가 생기고 농업을 위한 각종 기술, 과학 발달이 가능해지는데(기본적인 치수, 측량, 날씨와 계절과 천문 등등 농경 기술 발달을 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명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이게 없으면 농업의 생산 효율은 엄청 떨어지고요) 농업이 그 자체로 인류의 거대 공동체 집단거주의 원인 촉발점이 되려면 최초 어느 원시 혈연 공동체는 굳이 더 효율적인 수렵 경제를 버리고 자신들의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며 비효율적 원시 농경에 매달렸어야 한다는 소리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인력이 부족해져서 다른 종족을 침략해 흡수하고 노동력을 불리고... 이게 가능했을까요?
오히려 거꾸로 생각한다면 더 나은 답이 될 수도 있겠지요. 뭔가 인류가 다른 어떤 요인에 의해 원시공동체끼리 모여 살며 더 큰 거대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는데, 커진 규모의 공동체가 먹고 살기에는 수렵과 채집으로는 한계가 명확했기에 더 나은 식량 생산 방법을 찾아보던 중 농경을 채택하여 발전시켜보다가 농업의 발달+노동력 증가로 인해 농업의 식량생산 효율이 임계점을 넘어 대폭발, 이쪽 시나리오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처음 말씀 드린 괴베클리 테페의 발굴 의의는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문명과 현대 사이의 간극보다 그 문명과 괴베클리 테페 간 간극이 더 큰 초고대 종교유물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종교의 발생으로 인해 인류가 모여살게 된 것이 먼저이고, 그렇게 모인 인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경 발달이 어쩔수 없이 뒤따르다가 농경 기술 개발이 어느 수준 이상 돌파하며 폭발적 문명발달이 가능해졌다는 가설이 세워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글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본문 글은 바로 이 가설에 대한 근거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