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공감해요.^^
70대를 떠나서, 아직도 프로페셔널이라는 점은
평소에 건강을 포함한 자기관리를 얼마나 잘하고
있겠어요. 특히 목을 쓰는 직업인데..
근래는 비성우 탤런트나 배우가 더빙을 하면서
성우의 연기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 * *
성우가 그 인기와 유명세를 하늘같이 찌르던 때는
7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흑백 텔레비젼 수상기의
(이젠 참으로 어색한 말이네요.) 보급이 가구당 10%를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주소년 아톰의 더빙을 하고 계셨지만)
성우 박영남씨는 1972년 10월1일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소년극장 손오공'으로 무한질주를 하죠, 심지어 성인들도
손오공의 주문 '우랑바리 다라 나바롱 쁘따라까~'..을
줄줄 외우고 다녔을 정도를 인기를 구가했죠.
당시 27세 였는데, 그 이후 어린이 날 쯤인가, TBC라디오
공개홀에서 직접 나와서 인사를 했어요. 그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환호는 이루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 * *
그 이후에 간간히 TV 출연까지도 하시닌 하셨었어요.
지금, 저렇게 멘션을 한 것은, 프로그램을 즐기는 시청자께
몰입도를 붕괴시키는 고통을 안겼으리라는 진심어닌 근심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직도 현역이라 감사한 분입니다.
▼ 1972년 10월2일 '소년극장 손오공' 프로그램 안내
(당시는 라디오 안내가 앞 쪽으로 나와있는게 격세지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