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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16: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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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입양, 특히 성묘 고양이 입양이 제가 각오한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란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제 경우은 사실 어떤 분들에게는 납치라고 여겨질수 있는 케이스 입니다
길에서 태어난 아이이고 햇수로 5년을 길에서 살았습니다. 새끼때부터 사람을 너무 잘 따랐고 애교많은 성격덕에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먹이도 챙겨주고 집도 만들어줘서 참 예쁘게 잘 컸어요
먹이 챙겨주는게 가능했던건 고양이가 아파트 단지 바로 옆 동산에 살았기 때문에 흔히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면서 생길법한 쓰레기나 소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워낙 한적한 마을이라 괜찮았던 거죠
이 녀석 덕분에 이웃과 교류가 전혀 없을법한 마을에서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들깨가 영역을 지킬 힘이 점점 없어지고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걸 아는 길고양이들의 유입으로 매일 밤 싸움이 벌어지면서 소음문제가 발생했구요.
들깨가 영역에서 쫓겨나면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무분별하게 먹이랍시고 사람먹는 음식을 화단에 놓고가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자연히 고양이 밥 챙겨쥬는 것에 반발심을 가지는 분들도 생기구요
이 과정에서 노쇠한 들깨는 계속해서 부상을 입었어요. 저는 몇달을 고민하다가 같이 밥챙겨주는 다른 아파트 주민분과 상의 끝에 들깨를 남자친구 집으로 입양했습니다. 들깨가 사라지면서 밥도 사라지고 길고양이들도 먹이를 찾아 다른곳으로 떠났습니다
여기까진 인간 입장에서 보면 해피앤딩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아니었죠
들깨는 처음 2주를 밤마다 쉼없이 울었습니다. 좀 적응하나 싶었는데 바뀐 환경 때문인지 감기에 걸리고 말았죠. 길에서는 제 무릎에 올라오려고 기를 쓰던 아이가 이제는 무릎 근처도 안옵니다 여전히 애교는 많지만 하루종일 힘없이 앉아있을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제 입양한지 두달째인데 저는 하루에도 몇번씩 내가 들깨를 데려온 것이 잘한일인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분명 들깨가 이대로 밖에서 살았다면 빠른 시일 내에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의 동네북 수준으로 맞고 다녔으니까요. 그래도 들깨는 평생을 밖에서 산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를 집안에 가둬두는건 지금 생각해도 옳지 않다고 느껴요.
결국 들깨를 살리고 싶다는 제 욕심인거죠. 들깨의 맑은 초록눈을 볼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단순히 인간 입장에서 딱한 생명 구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길고양이 입양은 고양이 입장에서 그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에요. 그게 긍정적인 방향일수도, 그 반대일수도 있는거죠. 이제 곧 봄이 오면 길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할텐데, 마냥 가엽다는 생각에 손대기 전에 깊이 생각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