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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1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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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양이의 전상서
또 어디가냐, 나가서 사냥해오는 것도 아니면서. 나라도 집에 남아있으니 영역을 지키지 자꾸 영역 비우면 큰일 난다. 영역은 머무를 때 지킬수 있는 거란다 명심하렴.
물이 또 썩었구나. 오래 방치하면 사료 찌꺼기가 둥둥 뜨고 먼저도 들러붙고 좋지 않단다. 가급적 흐르는 물을 준비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또 먹지도 않고 얼굴에나 물칠 장난이나 하고. 그래놓고 바로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물 묻은걸 질겁하면서 수건에 닦는걸 매일 지켜보는 내 마음이 참 답답하단다.
또 화장실을 안 치웠구나. 네가 내똥이나 감자를 캐낼 때는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똥을 밟으면서 모래를 파내야하니 어쩔 수 없구나. 생각날 때마다 자주 좀 치우렴. 아니면 베란다를 전부 모래로 만들 생각은 없니? 그럼 너도 자주 안 치우고 나도 깨끗하게 쓸 수 있을 거야.
사료가 맛이 없다. 하지만 이게 아니면 딱히 먹을 수 있는게 없지. 바꾸기 전전전에 먹던 것이 훨씬 좋았는데. 내가 살이 찌는게 무슨 큰 문제라고 이런 맛없는 걸 주는지. 넌 밤이고 주말이고 계속 남이 사냥해온 닭 같은 걸 넙죽넙죽 받아먹으면서, 나에게는 시커먼 염소똥 같은 사료만 주니 빈정이 상한다. 츄르는 1일 1포 줬으면 좋겠는데 왜 찬장에 아껴놓고만 있니?
보아라 오늘도 집밖에는 사람들도 새들도 곤충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구나. 집 안에는 딱히 움직이는 물건이 없으니 역시 창밖을 보는게 제일 좋아. 햇볕이 노곤노곤하네.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