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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2 17: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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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둘러싼 정쟁과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전투가 주요 씨줄이기는 한데 그 안에서 종교적인 성찰을 할 수 있는 많은 에피소드가 담겨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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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던 중 수도사가 일행에게 외치는 말. 십자군 전쟁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광기에 물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오! 천국으로 가는 선행이오!"
살라딘이 케락 성의 포위를 풀고 물러나자, 이에 항의하는 이슬람 고위 성직자와의 대화:
성직자: 왜 물러나시는 겁니까? 신께서는 우리의 승리를 바라십니다!
살라딘: 물론 신께서는 우리의 승리를 바라신다. 하지만 자네는 전염병, 보급, 배후의 적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준비되지 않는 자에게 신의 은총은 결코 깃들지 않는다. 신께서 날 왕으로 추대하기 전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이겼는가?
성직자: 한번도 없었습니다... 모두 우리의 죄 때문이었지요.
살라딘: 틀렸다. 준비가 안 돼서 패한 거다.
예루살렘 공방전 직전에 발리앙이 예루살렘 군민들에게.
"이 분쟁은 우리가 태어나기 100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또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처음에 유대교의 성전이 들어선 곳이고, 로마의 침략 후엔 부서져 통곡의 벽이 있다. 또한 그 위에 무슬림의 성전이 있으며, 예수의 무덤이 있다. 이 중 어떤 것이 가장 신성한가? 모스크? 성묘? 통곡의 벽? 그런 건 없다! 모든 것이 소중하니까! 우린 이 벽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이 벽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예루살렘 공성전 때 시체가 부패해서 전염병을 일으킬 것을 방지해 시체를 불태우는데, 현장에 있던 대주교가 심판의 날 문제로 시체를 태우면 안 된다고 말하자,
"신이라면 이해해 줄 것이고, 만약 이해 못 한다면 그건 신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괜찮습니다."
예루살렘 공방전 때 무슬림 측이 협상을 원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체 못 태우게 했던 대주교가
"그냥 개종합시다. 나중에 회개하고."
그러자 발리앙의 돌직구.
"제게 종교라는 것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주교님."
예루살렘 공성전이 일단락되고 발리앙은 살라딘의 협상에 응해 나아간다.
살라딘: 도시를 넘겨주겠나?
발리앙: 이 도시를 뺏기기 전에 다 태워버리고 말겠소. 당신의 성지와 우리의 성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예루살렘의 모든 것들을.
살라딘: 왠지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 다 파괴해 버리시겠다?
발리앙: 마지막 돌 하나까지.[14] 그리고 여기에 있는 기독교인 기사 한 명 한 명이 사라센들 열 명을 각자 저승길로 데리고 갈 것이오. 당신은 여기서 당신의 군대를 모조리 잃을 것이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이오. 신께 맹세하건대 이 도시를 점령하면 당신도 파멸할 것이오.
살라딘: 자네의 도시는 여자와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지. 만약에 나의 군대가 전멸한다면… 자네의 도시도 그리 될 텐데.
(잠시 침묵)
발리앙: 조건을 제시하시오. 나는 아무 요구도 않겠소.
살라딘: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기독교도의 땅으로 보내 주겠네. 모든 영혼들을…. 여자, 아이, 노인, 그리고 자네의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자네가 모시는 여왕까지. 자네의 왕은, 그가 해온 짓으로 봐서… 자네에게 넘기지. 신의 뜻에 맡기겠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이네. 신께 맹세하지.
발리앙: 기독교도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는 도시의 모든 이슬람교도를 학살했습니다.
살라딘: 나는 그런 인간들과 달라. 나는 살라딘이다. 살라딘.
발리앙: 그렇다면 그 조건 하에 예루살렘을 내어 드리지요.
살라딘: 살람 알레이쿰. (그대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
발리앙: 그대에게도 평화가 함께하기를.
(서로 등을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다가, 발리앙이 멈칫하고 묻는다.)
발리앙: 예루살렘이란 게 뭡니까?
살라딘: 아무 것도 아니라네.
(살라딘은 다시 등을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향하고, 발리앙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살라딘, 몇 걸음을 걷고 이내 멈춰 돌아선다.)
살라딘 : …모든 것이기도 하지.
작중 내내 전쟁도발, 잔혹행위 등 만행을 저지를 때마다 십자군과 성전기사단이 입에 올리는 한 마디.
"신께서 바라신다(God will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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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말 발리앙과 살라딘의 대화는 물리적으로 보면 그다지 큰 가치도 없는 예루살렘이라는 땅을 둘러싸고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된 것을 상기시켜주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음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특별한 가치가 없는 한 도시를 단지 두 종교의 성지라는 이유로 근 백년간 전쟁을 일이킨 것에대한 자조가 담겨져있음
물리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종교적으로는 모든 것이기도 한 예루살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