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2
2015-09-20 10:06:36
0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자연재해에 대한 성공적인 대비는 이미 그 자연재해가 집단 모두의 문제로 확산된 다음이라는 반론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비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이전에 그 재해가 치명적인 한계에 도달하는 경우는 망하는 거고요.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에 대한 것은 어떨까요?
운석은 꾸준히 지구에 떨어지고 있고, 일부는 작은 피해를 입히며, 간간히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크기의 것도 종종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데, 우리는 이 사건을 여전히 예측불가능한 사고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 운석 충돌에 대한 대비는 그다지 완벽하지 못합니다. 위험 크기의 수많은 소행성들을 추적하고 있긴 하지만, 모든 소행성들의 궤도를 장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주항공 기술에 대한 투자는 경제적 논리에 밀려 지지부진하고,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들의 국제적인 공조도 불충분하죠.
이미 과거에 공룡들을 멸종시킨 소행성이 떨어졌고, 앞으로도 같은 규모의 것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다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가며 소행성 충돌에 대한 대비를 우선시하지 못하는 걸까요?
본 글의 관점으로는 그것을 직접적인 운석 충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적고, 그들이 사회에 효과적인 민폐를 끼치지 못해서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만약에 늑대들의 예처럼, 운석 피해를 입은 사람이 또 다른 운석 무리를 이끌어낼 능력이 있었다면(그리고 지속적으로 살아남는다면) 사회는 운석 충돌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겠죠.
이러한 가정을 보면, 운석 피해를 입은 사람은 그저 자신의 피해를 남들에게 확산시켰을 뿐인데도 사회는 운석 충돌에 의한 궤멸적 상황을 맞게 되는 위험으로부터 보다 안전해집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과정을 통해 유해한 짐승이나 전염병 등의 문제에 대해 효과적인 노하우를 쌓아올렸죠.
또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만약 절대적 기아에 시달리는 30%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굶게 만들 수 있었다면 식량 부족과 기아 문제는 옛날 옛적에 해결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배부른 사람들은 굶주리는 사람들의 문제에 신경쓰지 않으니까요.
뭐, 결국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시키려는 경향이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며, 그것이 우리가 가진 본질성 중에 하나라는 관점인데...
음. 설득력이 부족한 것은 문장력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혹은 논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일 테니, 저도 좀 더 생각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