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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12-06-26 23:08: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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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것은 남송과 금의 전투인데, 금군은 거의 기병을 완전히 마갑까지 씌워놓은 우리가 상상하는 중장 기병을 끌고 나왔고 남송군은 이에 대응하여 전국시대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중국의 여러 국가들의 대 기병 전술에 핵심으로 자리 잡은 강력한 노와 중장갑으로 도배를 한 보병들에게 도끼를 쥐어주고 상대를 했다는겁니다.

물론 '창성' 그러니까 서양의 밀집 방진과 동일한 전술을 사용할 장창병은 별도로 구성했었습니다만 이전까지 맞기병 (...) 내지 일종의 이동 진지를 바탕으로 싸우던 중국의 그것과는 색다른 방식이라 볼수가 있습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조선을 비릇한 한반도의 경우는 아시겠지만 대다수가 산악과 구릉 지형으로 이루어진 환경 조건상, 전술 교리에 있어 야전은 큰 부분이 될수도 없었고, 임진왜란이라는 조선 군사 분야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거대한 전쟁을 통해 볼때도 주적이 국토의 90%가 산악지형이라 기병이 발달할수 없었던 사실상 기병 전력이 전무했던 일본이라 야전의 대 기병 전술을 확립할 필요성이 별로 없었지요,
12 2012-06-26 23:08:03 0
기병대가 준비없이 보병에게 닥돌하면 어떻게 되는가 [새창]
2012/06/26 15:52:24
재밌는것은 남송과 금의 전투인데, 금군은 거의 기병을 완전히 마갑까지 씌워놓은 우리가 상상하는 중장 기병을 끌고 나왔고 남송군은 이에 대응하여 전국시대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중국의 여러 국가들의 대 기병 전술에 핵심으로 자리 잡은 강력한 노와 중장갑으로 도배를 한 보병들에게 도끼를 쥐어주고 상대를 했다는겁니다.

물론 '창성' 그러니까 서양의 밀집 방진과 동일한 전술을 사용할 장창병은 별도로 구성했었습니다만 이전까지 맞기병 (...) 내지 일종의 이동 진지를 바탕으로 싸우던 중국의 그것과는 색다른 방식이라 볼수가 있습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조선을 비릇한 한반도의 경우는 아시겠지만 대다수가 산악과 구릉 지형으로 이루어진 환경 조건상, 전술 교리에 있어 야전은 큰 부분이 될수도 없었고, 임진왜란이라는 조선 군사 분야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거대한 전쟁을 통해 볼때도 주적이 국토의 90%가 산악지형이라 기병이 발달할수 없었던 사실상 기병 전력이 전무했던 일본이라 야전의 대 기병 전술을 확립할 필요성이 별로 없었지요,
11 2012-06-26 22:58:57 0
[새창]
그리고 '팔진도(제갈량이 편집했다는 그 팔진도 맞습니다, 단 소설적 마술쇼가 아닌 이전에 쓰이던 전술을 편집, 정리해 활용한 겁니다.)'에 따르면 대기병전술은 기본적으로 마차 등으로 둥글게 벽처럼 감싸고 노수와 창병으로 방어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진서 마륭전에 따르면 선비족과 강족들의 봉기로 양주가 점거당했을때 마륭이 '팔진도에 근거하여 편상거(가죽으로 덮은 마차)를 만들고, 넓게 트인 곳에서는 녹각거를 사용하였으며, 험하고 좁은 길에서는 수레 위에 나무로 덮개를 씌워 계속 싸우며 전진하여' 양주를 수복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명나라의 경우 명의 주적은 오라이트 같은 경무장한 기병이었기에 수레를 이용해서 이동진지 구축하고 총과 화포로 대항했습니다.

이렇듯 엄폐물을 세우고 후방에서 궁수 및 노궁수로 사격해 때려잡는, 서양과 별 차이 없는 대기병전술을 동양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10 2012-06-26 22:58:57 0
기병대가 준비없이 보병에게 닥돌하면 어떻게 되는가 [새창]
2012/06/26 15:52:24
그리고 '팔진도(제갈량이 편집했다는 그 팔진도 맞습니다, 단 소설적 마술쇼가 아닌 이전에 쓰이던 전술을 편집, 정리해 활용한 겁니다.)'에 따르면 대기병전술은 기본적으로 마차 등으로 둥글게 벽처럼 감싸고 노수와 창병으로 방어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진서 마륭전에 따르면 선비족과 강족들의 봉기로 양주가 점거당했을때 마륭이 '팔진도에 근거하여 편상거(가죽으로 덮은 마차)를 만들고, 넓게 트인 곳에서는 녹각거를 사용하였으며, 험하고 좁은 길에서는 수레 위에 나무로 덮개를 씌워 계속 싸우며 전진하여' 양주를 수복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명나라의 경우 명의 주적은 오라이트 같은 경무장한 기병이었기에 수레를 이용해서 이동진지 구축하고 총과 화포로 대항했습니다.

이렇듯 엄폐물을 세우고 후방에서 궁수 및 노궁수로 사격해 때려잡는, 서양과 별 차이 없는 대기병전술을 동양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9 2012-06-26 22:49:22 0
[새창]
realgura님의 댓글에 사족을 더하자면 동양도 야전에서의 대 기병 전술은 발전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가령 전술적인 측면을 사례로 보자면 촉과 위 그리고 오 나라 가 대립하던 삼국시대에는 거진 그러니까 가시나무등 실린 우마차를 사용해 임시 바리케이드로 사용해 방어진을 짜는 병법이 있었고

당나라 병법서 이위공문대를 보면 직사각형의 방진에 4천명 당 궁 노수 각각 400씩 총 800을 기준으로 군에 따라 최대 1/3의 비율로 구성한다 하였으며 송나라 시대에는 본문의 항전차를 이용하여 기병의 돌격을 막고, 뒤에서 궁노수 들이 화살비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비슷하게 고려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시 본문에서 말씀하신 검차라는 병기가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용법도 이위공문대의 그것과 별 차이는 없었습니다.)

또한 남송의 장군 오인의 첩진법을 보면 장창병을 제일 앞에 앉아 일어나지 않게 하여 그 뒤로 강궁, 강노, 신비궁을 차례로 배치시켰습니다, 적이 1백보 이내로 접어들면 신비궁을 그 다음은 강궁과 강노를 차례로 발사하여 적을 제압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8 2012-06-26 22:49:22 0
기병대가 준비없이 보병에게 닥돌하면 어떻게 되는가 [새창]
2012/06/26 15:52:24
realgura님의 댓글에 사족을 더하자면 동양도 야전에서의 대 기병 전술은 발전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가령 전술적인 측면을 사례로 보자면 촉과 위 그리고 오 나라 가 대립하던 삼국시대에는 거진 그러니까 가시나무등 실린 우마차를 사용해 임시 바리케이드로 사용해 방어진을 짜는 병법이 있었고

당나라 병법서 이위공문대를 보면 직사각형의 방진에 4천명 당 궁 노수 각각 400씩 총 800을 기준으로 군에 따라 최대 1/3의 비율로 구성한다 하였으며 송나라 시대에는 본문의 항전차를 이용하여 기병의 돌격을 막고, 뒤에서 궁노수 들이 화살비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비슷하게 고려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시 본문에서 말씀하신 검차라는 병기가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용법도 이위공문대의 그것과 별 차이는 없었습니다.)

또한 남송의 장군 오인의 첩진법을 보면 장창병을 제일 앞에 앉아 일어나지 않게 하여 그 뒤로 강궁, 강노, 신비궁을 차례로 배치시켰습니다, 적이 1백보 이내로 접어들면 신비궁을 그 다음은 강궁과 강노를 차례로 발사하여 적을 제압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7 2012-06-26 22:19:31 0
인술라 미술(히베르노-색슨 미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上 [새창]
2012/06/26 09:03:32
아무래도 상품성이 있으니 말입니다, 더 좋게 말하자면 예술의 일환일테고 말입니다.
6 2012-06-26 18:53:53 0
마약의 역사 (14) 아편의 유독성에 대한 더딘 자각 [새창]
2012/06/25 20:14:04
말씀대로 먼 훗날에는 인도의 세수와 무역 적자의 문제로 동인도 회사의 아편 밀매를 묵인했던 영국 정부와 같은 선상에서 평가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5 2012-06-26 18:48:12 0
[새창]
이른바 중장기병 환상론에 빠져 계신분들이 간과하는점은 물론 병종 본연의 역할도 그렇지만 보병에 대한 기병의 공격은 수차례 반복적으로 일정한 지점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상대측 부대가 수용할수 있는 피해의 한계점을 넘겨 궁극적으로 붕괴시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인간들을 일격에 돌파하는게 아니라 말이지요, 사실 이렇게 돌파하는게 가능한 애기도 아닙니다. 때문에 척준경의 일대기나 조자룡의 고사가 인간을 벗어났다고 하는것이죠,

반대로 보병의 방진은 이러한 피해의 한계점을 높임과 동시에 기병의 피해를 증가시켜 교환비를 동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것이고 말
입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중세 기사들의 랜스 차징은 돌격하고 돌아와 부러진 창을 교환하거나 전마를 교환하고 다시 돌격을 가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시켜 보병의 방진을 붕괴시키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테르시오 방진이 높은 평가와 함께 기병을 사장시켰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것은 바로 이러한 종래의 전술에 있어, 보병과 기병간의 교환비를 역전시켰기 때문이지요,

결론을 말하자면 잘 짜여진 적 보병의 방진은 테르시오 방진의 사례처럼 아군의 교환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때문에 본문에 언급되었듯 우회공격을 가하거나 다른 병종과의 협공으로 최대한 피해를 누적시키고 방진을 붕괴시키는 등 교환비를 유리한 방향으로 돌릴필요가 있지요,

(육성 및 유지 비용상 보병은 저렴하지만 기병은 값비싸며 제작에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하는것도 어느 정도 필요성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2012-06-26 18:48:12 0
기병대가 준비없이 보병에게 닥돌하면 어떻게 되는가 [새창]
2012/06/26 15:52:24
이른바 중장기병 환상론에 빠져 계신분들이 간과하는점은 물론 병종 본연의 역할도 그렇지만 보병에 대한 기병의 공격은 수차례 반복적으로 일정한 지점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상대측 부대가 수용할수 있는 피해의 한계점을 넘겨 궁극적으로 붕괴시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인간들을 일격에 돌파하는게 아니라 말이지요, 사실 이렇게 돌파하는게 가능한 애기도 아닙니다. 때문에 척준경의 일대기나 조자룡의 고사가 인간을 벗어났다고 하는것이죠,

반대로 보병의 방진은 이러한 피해의 한계점을 높임과 동시에 기병의 피해를 증가시켜 교환비를 동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것이고 말
입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중세 기사들의 랜스 차징은 돌격하고 돌아와 부러진 창을 교환하거나 전마를 교환하고 다시 돌격을 가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시켜 보병의 방진을 붕괴시키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테르시오 방진이 높은 평가와 함께 기병을 사장시켰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것은 바로 이러한 종래의 전술에 있어, 보병과 기병간의 교환비를 역전시켰기 때문이지요,

결론을 말하자면 잘 짜여진 적 보병의 방진은 테르시오 방진의 사례처럼 아군의 교환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때문에 본문에 언급되었듯 우회공격을 가하거나 다른 병종과의 협공으로 최대한 피해를 누적시키고 방진을 붕괴시키는 등 교환비를 유리한 방향으로 돌릴필요가 있지요,

(육성 및 유지 비용상 보병은 저렴하지만 기병은 값비싸며 제작에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하는것도 어느 정도 필요성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2012-06-24 23:33:13 0
마약의 역사 (4) 아편 제조와 거래 [새창]
2012/06/19 10:11:13
뒤늦게 댓글을 확인하고 답변 해 드리는점 참으로 죄송합니다, 아무튼 좋은 애기가 오가는 점에 저 또한 감사드리고 싶어지네요,
2 2012-06-24 22:57:22 0
[새창]
참 씁쓸한 애기에 좋은 위로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음, 사족을 더하자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사례는 최근까지 있었지요, 암페타민 계열 약물인 메스암페타민 혹은 메틸암페타민 소위 말하는 히로뽕말입니다, 처음은 피로회복제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후에 심각한 부작용이 증명되어 마약으로 분류 되었지요,

다만 아편의 경우는 바이코딘이나 옥시코딘 등 합법적인 약물로서 제작되어 사용되지만 이 암페타민의 경우는 그나마 주의력 결핍증에 좀 쓰이다가 도저히 부작용에 대하여 아편 등과 달리 화학적으로 전용이나 개량(?)할 방도가 없어, 사실상 사장되는 분위기이더군요,
1 2012-06-23 22:30:47 0
[새창]
악진님// 수정 제한이 풀리는데로 수정하겠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일단 음주가 제한되고 아편류가 허용되는것은 아무래도 농사라는 측면에서 비릇되는 문화적 차이 인것 같습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는것과 같은 논리이겠지요,

맞고의피님//

음주의 금지는 다음 꾸란 5:90에 의거합니다.

'믿는 자들이여 술과 도박과 우상 숭배와 점술은 사탄이 행하는 불결한 것들이거늘 그것들을 피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번성하리라'

일단 여기에 관해 몇가지 편법이나 대체품이 있는데 이슬람 교도들은 끓인 포도주는 마셔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끓이게 되면 맛과 색이 달라지므로 이건 술이 아니라고 본것이죠, 즉 어떤 음료를 술로 지칭했는지 알수가 없다는 점을 정확히는 당시 술이라면 포도주 만을 통상 지칭했던것을 이용한것입니다.

두번째는 까흐와는 포도주라는 의미인 동시에 커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커피를 가르켜 아침의 포도주라고도 불렀죠,

세번째는 포도주는 안되지만 포도즙은 됩니다.(....) 네번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성행했던 대추야자 술이라는 율법학자의 추론도 가능합니다, 일단 코란에서 금지할 당시의 술은 전부 포도주였으므로 대추야자 술은 논외의 애기이지요, 비슷하게 벌꿀술도 가능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편법이나 대체품과 별개로 사람의 욕구라는것은 늘 수요를 창출하고 공급을 이뤄냅니다. 불법으로 암암리에 마시기는 잘 마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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