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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8: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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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gura님 우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의견차가 발생하는것이 동양의 기병 전략인데, 확실히 산악 지형이 90% 이상인데다 군마의 수급 문제로, 하마 기병을 운용했던 일본이나, 역시 산악과 구릉 지대로 인하여 수성 전략을 주 전략으로 택할수 밖에 없었던 고려나 조선등의 문제는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경우를 보자면 수성 전략이 주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농민을 징집해서 바로 창을 쥐어준다 해서 방진을 짤수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문에 서양에서 15세기를 주름잡았던 파이크병의 공세적 운용과 같은 기동을 기대할수 없기에 방어적인 측면에서 기병에게 근접전을 강요하는 이른바 야전 축성 전략이 큰 부분으로 자리를 잡은것입니다,
이러한 우마차나 검차를 이용한 전략이 훈련도가 저조한 징집병에게 적합하다는것은 비단 동양의 사례만은 아닙니다, 후스파 토벌의 사례나 14세기의 플랑드르의 반란군들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농민 반란등 훈련도가 매우 저조한 서양의 농민병이나 반란군들 역시 마차를 활용한 방어선을 즐겨 사용했으니 말이지요,(멀리는 로마 시대 부터 사용되었으니 나름 전통이라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른바 전차를 이용한 방어선의 문제는 훈련도가 아니라 대형화기에 대한 취약성인데 물론 이것이 전 시대에 걸쳐 공통되게 통용되었다 라는것은 물론 아닙니다. 때로는 앞서 언급드렸지만 맞기병의 전략등이 즐겨사용된 시대도 있었고 말입니다.
다만 중국의 왕조들의 주적이었던 유목민족이나 기타 국가들에 있어 16세기 서양의 경우 처럼 강력한 대형화포를 야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지속적으로 대부분의 전 시대에 걸쳐 사용될수 있었지요,
서양의 경우 16세기 초까지 어떤 투사무기도 단독으로 집중운용한다고 해서 기병의 돌격에 대응하거나 15세기 초까지 장창병의 공세적 운용을 넘어설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화승총의 시대를 열었다는 이탈리안 전쟁을 보더라도 참호를 파고 거기에 효과적으로 배치된 화승총이 지근거리에서 밀집운용됨으로서 부족한 명중률 대신 관통력이 극대화시키는 공성전과 크게 다를바 없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동양이나 서양이나 세부적인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거시적으로 볼때 대 기병 전술을 펼치는 바에 있어 큰 차이는 없다는 점이 이러한 측면에서 들어나는것입니다.
절강지방이나 계주총병에서의 척계광이나(물론 절강지방에서 왜구가 다수의 기병을 운용했으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호란 당시 광교산, 탑골, 쌍령전투등에서 류림, 김준룡, 영장 선약해 등의 경우 이탈리안 전쟁 당시 스페인군의 야전축성에 못지않은 보병중심의 방어적 전술을 기반으로한 고지 선점, 목책 건설등의 전투지휘를 벌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