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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15: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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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황희를 그렇게 아낀 이유는 황희가 두문동 출신이었기 때문인게 크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해서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고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해 버립니다.
이성계가 그들을 회유하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고려의 상징적인 존재들이라 할수 있었기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고
불을 지르면 지들이 안나오나 보자 하고 불을 질렀는데 진짜 안나오고
거기서 다 타 죽은 일이 있습니다. 두문동 72현이라고 하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근데 사실 회유할때 단 한명이 응했는데 그게 황희 였습니다.
배신했다는 말도있고 두문동 사람들이 한명은 살리자고 해서 등떠밀려
나왔다는 말도 있고 그렇습니다만.
결국 건국된지 얼마안된 조선 입장에서는 황희가 가진 상징적 의미가
너무도 컸기에 그리도 오랜기간동안 벼슬자리에 앉혀놓고 이용한 것
이라 생각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황희가 청렴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돈받고 벼슬자리
팔아먹거나 하는 등의 행동이 너무 심해서 세종대왕이 적당히
해먹으라고 은근히 압박도 주고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다시 등용되긴 했지만 비리로 파직 된적도 있고..
하다못해 간통 사실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황희가 무능한 인물이었다면 쫒겨나도 진작에 쫒겨 났겠지만
그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 허물을 모두 덮어버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