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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8 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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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욱일기
우선, 맥락.
이 논쟁에서 '욱일기'를 처음 들고나온 사람은 생선까스님 당신이며, 해당 워딩은 이러합니다.
"우리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건...
미국이나 유럽에서 욱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쓰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욱일기 디자인이 이쁘다고 갖다 쓰는걸 우리가 무지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그럴 자격이 있어서 하는 건가요?
우리 역사가 아니고, 우리는 그럴 책임이 없다고 무지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즉, 님은 이 주제에 대해 (아마도, 아니면 우리 사회도 인종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에 대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욱일기를 끌어들인 것이겠지요?
님의 워딩은..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분별한 욱일기 사용 역시 그들은 한국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으므로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것이 님이 주장하는 바임이 확실해 보이므로... 즉, '우리에게도 인종차별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무분별한 욱일기 사용 역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다시말해, 인종차별의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과 같이, 무분별한 욱일기 사용 역시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로 되는군요.
블랙블랙조님은 이런 주장에 대해서, 그들이 욱일기 디자인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따라서 그것(몰랐던 역사)를 지적해줄 수는 있되, 그 방법이 오취리가 했던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댓글을 답니다. 또한 블랙블랙조님은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논쟁의 가장 초기부터 블랙페이싱의 '맥락'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계십니다.
제가 피노키오 영화 이야기에서 모든 악당이 백인이 아니라 아시아인이 된다면, 단 하나의 요소가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이야기했었죠? 이것이 바로 '맥락'입니다. 개별적인 사례들에서의 '맥락'뿐만 아니라, 블랙페이스의 역사와, 더 나아가 인종차별의 전체 역사와 관한 '맥락'인 것이죠. 저한테 이정도로까지 두들겨맞고서야 이제야 "맥락을 고려해야죠" 이지랄 하는 님과는 처음부터 수준의 차이가 났었다라는걸 이제 좀 깨달으실 수 있으려나요?
흑인에 대한 역사적인 죄악을 반성하며, 흑인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오늘날 흑인들을 착취해서 쌓은 부 위에 선진문명을 누리고 사는 백인들의 원죄와도 같은 것이죠. 마치 양식있는 일본인들이 태평양 침략전쟁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독일인이 유태인에 대해 그런 것처럼요.
홀로코스트는 커녕 아우슈비츠 근처에도 안 가본 독일인이라 해도 대체로 그러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도 그러한 인식에 기반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물론, 일본인들은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이 문제겠지만.
하지만, 그런 의식을 아무에게나 막 들이대면, 그때부터는 폭력이 되는 거에요. 당연히 모든 인류가 일제의 침략전쟁과 학살이라든가, 홀로코스트라든가, 대서양 노예무역의 잔학함에 치를 떨고 그것을 인류 공통의 죄악으로 자각하며, 그러한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기억을 공유해나가지만, 그 정도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다를 수밖에 없다고요. 마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필요성에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 절박함이 실제 이산가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다른 것처럼요. A라는 사람이 음주 교통사고를 내서 B라는 사람의 어린 아이를 치어죽였고, 그 사고를 접한 모든 사람이 충격에 빠지고 죽은 아이를 애도하고 B를 위로하고 A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B를 위로해줄지언정 모든 사람들이 A가 B에 대해서 갖는 죄책감을 똑같이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이해가........좀............. 되시나요 정말로?
블랙블랙조님은 이러한 점을 이야기한거에요.
당연히 노예제도는 우리랑은 상관이 없으니까, 우리는 백인이 흑인에 미안해하든말든, 흑인이 분개하든말든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백인들은 분명히 잘못했고 흑인들은 인종차별의 역사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흑인들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하되, 마치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B를 위로하듯이,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돕되, 우리 자신이 흑인들에게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이해 잘 안될거같아요. 님 수준 아니까.
바꿔말해보죠. 일제가 조선을 수탈하고 괴롭혔던 분명한 과거. 충분히 사죄하지 안고 있죠. 의식이 있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며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에요. 더 나아가서, 양식있는 사람들이라면 국적이 어찌됐든 이러한 사실을 세계의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과 연대하며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거에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티벳과 위구르의 독립을 응원하며, 그들에 대한 중국의 압제를 비난하는 것처럼요! 또한 극소수의 깨어있는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직접 행한 일이 아니라도, 진심으로 한국에 사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제로 매년 한국에 와서 직접 사과하는 일본인들도 있어요!
이런 게 바람직하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렇게 일제 식민지배의 과거에 동감해주고 응원해주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도 일본인들과 똑같은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느껴야 한다! 너희도 매년 한국에 와서 사과해야 한다! 조선인들이 겪었던 아픔은 그토록 큰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요?
이제는 이해가 좀 되시려나요?
블랙블랙조님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셨었어요. 오케이? 지금이라도 다시 원 글로 가서, 블랙블랙조님의 글을 좀 읽어보세요.
님은 블랙블랙조님에게 어떻게 대답했냐면,
"욱일기를 쓰지 말라는게 전세계가 한국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주장인가요???"
라고 했어요.
블랙블랙조님의 주장은 제가 이렇게 다시 풀어드렸듯이, 잘못된 욱일기 사용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그들에게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흑인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과 연대할지언정, 백인이 짊어져야 할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였는데,
님은, "그게 왜 그런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네요."
라고 대답해버리죠.
이해를, 못하는거에요.
맥락을 깨닫지를 못하는거에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를 못하는거에요.
저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맥락'이라는 말을 드디어 기억은 했는데, 사용법은 전혀 모르는거지요.
개별적인 사안의 맥락, 해당 주제의 역사적인 맥락은 물론, 상대방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의 맥락조차도 파악을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A를 하지 말자라는 주장을 했는데, "그게 왜 A를 해야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이해가 안가네요"라고 대답할 수가 있는거에요.
지혜로운 사람과 바보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저는 님을 이길 자신이 없네요... 제가 엄청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님이 그냥바보가 아닌 슈퍼바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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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본문.
"저는 욱일기가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바로 그게 문제에요. 왜냐? 저의 주장이 아니라, 당신들이 이 논쟁 전체에서 일관되게, 이제야 쳐맞고 나서 '맥락'이니 뭐니 조금 언급이나 하는 수준이 되기 직전까지 한결같이 주장하던 당신들의 논리에 따르면,
욱일기를 보고 기분나쁜 한국인이 있다면, 그건 인종차별이 맞으니까요.
마치, 검게 분장한 얼굴을 보고 기분나쁜 흑인이 있다면, '아니야, 이건 흑인을 모욕하기 위한 분장이 아니야.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팀을 코스프레한거야'라는 주장은 무시된채 그 흑인이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그건 인종차별이 맞으니까요.
이 점에 있어서는, 비록 클라우드아틀라스나 로다주 거론같은 자폭을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다른 의미로 님의 의견을 훌륭히 뒷받침해주신 민방위특급전사님의 주옥같은 어록이 돋보이네요.
"적어도 흑인이 불편하고 잘못된 행위라고 지적을 했으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갈 문제를 왜 키우는지 모르겠네요."
"당한사람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추행은 성립합니다."
(혹시나 성추행쪽으로 화두를 돌려서 머 어떻게 해보실 생각이라면, 저야 글이 다시 길어질테니 좀 짜증나긴 한데, 저의 긴 글을 그대로 두들겨맞는게 행복하신 M이신지 묻고싶군요...)
그러니까, 의도와는 상관 없이, 맥락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내가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더라도, 아무튼 누군가 그것'때문에' 기분나빴다면 인종차별이고, 성추행입니다. 그게 당신들이 한결같이 주장해온 논지에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요! 그래서 저는 이전 글에서도 계속 주장해왔잖아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라고요.
그런 당신의 논리에 의하면, 욱일기 디자인을 보고 기분이 나쁜 한국인이 있다면, 그건 인종차별이 맞아요.
당신이 직접 "욱일기 디자인 사용은 인종차별입니다"라는 워딩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너무나 확고한 논리에 의해 당신은 욱일기가 인종차별이라는 주장을 해야 해요.
(대전제) - (어떠한 대상 혹은 행위에 대해서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인종차별이다.
(소전제) - 한 한국인이 욱일기 디자인을 보고 기분이 나쁘다.
(결론) - 그러므로 욱일기는 인종차별이다.
(fishCutlet) - ""저는 욱일기가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웃겨서 뒤로자빠질 지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