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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0 23: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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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0대 뉴스
1.부산미문화원 방화
1982년 3월 18일 부산시 부산미국문화원에서 방화사건이 발생, 1층 도서실에서 공부하던 장덕술군(23.동아대2년) 이 사망하고 3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사건 12일만에 일당 중 4명이 검거됐고 주범 문부식은 3월 31일 천주교원주교육원에서 자수했다. 이 사건은 원주교육원에 은신중이던 김현장의 배후조종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김과 최기식 신부가 구속됐고, 곧이어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성명서 파동으로 이어졌다.
2.전두환 대통령 아-가순방
전두환 대통령은 1982년 8월 16일부터 31일까지 케냐, 나이지리아, 가봉, 세네갈 등 아프리카 4개국과 캐나다를 공식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인 이번 아프리카 및 캐나다방문에서 전대통령은 각국 수뇌들과의 회담을 통해 국제정치 및 외교에서의 상호지원, 통상, 자본, 기술인력, 자원 등에 걸친 광범위한 남남협력의 토대를 다졌으며 방문성과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진의 교섭이 계속됐다.
3.윤노파 박양사건 무죄
윤경화씨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됐던 고숙종씨(47)가 1-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고 3백 4일만인 6월 17일 풀려난데 이어, 11월 30일에는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정재읍군(21)마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3백 9일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건 모두 형사재판에 있어서 증거 우선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평가됐다.
4이-장부부 어음사기
'건국이래 최대사건'으로 불릴만큼 이철희-장영자부부 어음사기사건은 규모나 여파가 엄청났다. 유통어음합계 7천1백11억원. 이로인해 혼란해진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금융혁명' 으로 일컬어지는 6.28조치가 단행됐고, 실명제파동으로 이어졌다. 여당의 사무총장이 물러나고 법무장관이 두 번이나 바뀌는 등 정치적 회오리도 몰고왔다. 이-장부부는 1-2심에서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
5.실명거래제 파문
'7.3금융혁명' 으로 불리었던 금융실명거래제방안이 끝내 미완성의 금융혁명으로 끝났다.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정의로운 경제사회를 이뤄보겠다는 행정부의 실명제는 정치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오는 85년말까지 유보' 라는 시한부 사장의 운명을 겪게 됐다. 86년 1월이후 대통령령에 의해 실명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그때 가서 여건이 또 어떻게 변할지몰라 실명제실시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