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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15: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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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제가 있으나 없으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용자도 버는 만큼 임금을 준다지만, 노동자도 받는 만큼 일을 하거든요. 보다 효율적인 노동을 공급받기 위해서 사용자는 결국 임금을 인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최저임금제가 적용되는 영역은 경제전반적인 게 아니라 국소적인 면인 걸 일단 인지할 필요는 있습니다. 즉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물가가 오르고 나라가 휘청대지는 않습니다. 보다 면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겠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저축보다는 수요를 할 터이며, 특히 지역에 기반한 자영업자에겐 이득이 되는 상황이 많을 겁니다. 눈앞의 인건비가 오르는 상황에서는 자영업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겠지만요. 반면 제품수명주기의 문제, 경쟁사의 입점 등 시장구조의 변화 등이 보다 직접적인 위기가 되겠지요.
최저임금 언저리의 노동시장은 좀더 특수한 형태로 다뤄봄직합니다. 노동시장은 정보비대칭성이 있는 시장입니다. 어떤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그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할지, 그러지 않을지 고용하기 전에는 잘 모르지요. 질 좋은 노동자와 나쁜 노동자가 섞여있는 상황이라면, 사용자는 그들의 노동생산성의 평균에서 임금을 지급하려 할 겁니다. 그러면 좋은 노동자는 시장에서 쫓겨나고 나쁜 노동자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그 나쁜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 평균에서 다시 임금이 결정되고 그 남은 인원 내에서 다시 그나마 좋은 노동자가 쫓겨나고 더 나쁜 노동자만 남게 되지요. 즉 정보비대칭성이 있는 노동시장에서는 좋은 노동자 순서부터 차례로 축출됩니다.
숙련노동자의 경우 학력이나 경력등의 스펙, 채용과정, 효율적 임금 등으로 정보비대칭성 문제를 제어할 수 있으나, 저숙련노동자의 경우는 시장의 요구이하의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만 공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하면 노동품질 저하로 노동시장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최저임금제로 제어할 수도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이지 않는다는 실증연구결과도 있으니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는 생각이상으로 복잡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참고 - 최저임금과 고용 : 뉴저지와 펜실배니아의 패스트푸드 산업의 사례연구, 1993)
https://www.nber.org/papers/w4509.pdf
이쯤되면 최저임금제는 정치적인 제로섬 문제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같은 임금수준에서 보다 선호되는 자국민 노동자가 유리해지고, 외국인 노동자가 불리해지는 식이죠. 한편 노동자 간을 비교하면 숙련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노동생산성 상승효과와 맞물려 다소 개선되겠고, 자본집약적 산업에서는 다소 손실이 있겠지요. 보통은 추상적인 추론과 계산보다는 정치적인 목표, 국가의 산업구조 재편을 위해 최저임금 외 노동관련 법률을 전반적으로 설계할 겁니다.
원론적으로 정리한다면, 시장을 추월한 정책은 시장심리를 위축시키고 비가격적인 장벽이 생기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시장의 신뢰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저임금을 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별 근거없이 최저임금을 올려야한다,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은 그닥 없겠습니다. 현실경제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아둔하진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