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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1 16: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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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9189
문재인 역할론? 대선 주자 조기 가시화 전략이라면 비판 받아야
프레시안 : 문재인 역할론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이철희 : 문재인 역할론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인지 의문이다. 직전 대선 후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역할론이 무조건 힘을 얻는 건 문제가 있다. 당을 구축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도 아니고 검증을 많이 거친 것도 아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정당'보다는 '운동' 중심으로 정치했다. 이렇게 계속 당정 분리로 가면 당이 끊임없이 위축된다. 여전히 문재인, 노무현과 같은 모델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정당을 허무는 게 맞지 않겠나. 지난 대선 전 안철수 전 대표와 경쟁할 때처럼 필요하면 정당을 강조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허물려는 건 편의적 발상이다.
박상훈 : 이전에 그랬던 대로 대선 주자 가시화 전략을 조기에 취한다면, 비판하고 싶다. 그런 손쉬운 선택이 만든 결과를 몇 번의 선거에서 유권자가 보여줬다.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이런 분들이 야심이 있다면, 당에서 역할을 만들기보다는 개인 이미지 자산을 관리해서 대선에서 승부를 보려는 리더십 유형을 지속하지 않기를 꼭 권하고 싶다. 야당의 변화를 원하는 시민이 그 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당의 조직 자산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에 비례해서만 대선에 나갈 자격이 있다. 정당보다 대선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를 반복하는 건 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시민을 동원하는 정치다.
이철희 : 물론 잠재적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이 전당대회에 나오는 건 좋다고 본다. 중요한 건 이젠 검증을 좀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당을 어떻게 끌고 갈 건지 미래를 꺼내놓고 그 안에서 검증을 받고 투쟁을 통해서 얻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당을 운영하고 대선에 출마하는 것, 그건 괜찮다. 그러나 자꾸 잠깐 부각돼서 점수 따고 빠지고, 이런 식이니 어떤 사람이든 당 대표가 돼 차기를 겨냥하면 다 죽는다.
물론 이를 다 이겨낼 정도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형식 논리 차원에선 맞다. 그러나 그렇게 강대한 조직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생기는 게 아니다. 수십 년 정치를 한 김대중 모델을 등장시킨다, 난 이거 못할 거라고 본다. 권력 순환이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데 어떻게 김대중 같은 사람이 나와서 판을 정리해주나. 바닥에서 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경쟁해야 한다.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건 누구한테 투표권을 줄지를 가지고 싸우지 말자는 거다. 모바일 투표를 허용하면 이쪽이 유리하고 저쪽이 안 유리하고 같은 싸움. 지금은 게임을 할 때가 아니다. 룰(규칙) 가지고 싸워서 여기서 승패가 결정 나면 세 싸움에 불과하다.
박상훈 : 문재인 역할론이란 걸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이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냐면, 김한길-안철수 또는 그전 김한길 체제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친노 쪽의 이야기란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든다. 자꾸 어떤 구원자를 불러들이려는 심리, 기존 체제를 은근슬쩍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 이게 민주당의 오래된 모습이다.
사람들이 이를 계파 정치, 계보 정치라고 부른다. 계파 정치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념이나 가치 차이로 당내 진보파, 당내 중도파, 보수파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는 다원주의적으로, 좋다. 두 번째는 역대 계파주의 형태였던 보시즘(Bossism·보스 정치)이었다. 지금은 이런 계파 정치는 많이 사라졌다.
최근 야당의 계파 정치 특징은 차기 대선 주자를 가질 수 있는 그룹들로 구성돼 있다. 이런 계파주의는 여론 동원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싸움의 형태가 불리하면 외부를 자꾸 불러들여서 힘의 균형을 도모하고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하는 구조다.
이런 계파 정치에 긍정적인 건 거의 없는 거 같다. 삼김정치는 그나마 권위주의와 싸운다고 양해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계파 정치가 갖는 기능이 뭔지를 모르겠다. 미국에서도 이렇게는 안 한다. 친노냐 비노냐. 친박, 친이, 반박 등 이름만 재미있는 이런 계파 정치는 한국 정치의 퇴행을 너무나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이든 누구든 만약 대선주자가 되려면, 본인들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역할론을 통해 불러들여지기를 바라는 심리로 또 정치를 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