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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7 11: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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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었다.
자베르의 아침은 언제나 같은 순서로 진행되고는 했다. 해도 아직 고개를 내밀기 전인 새벽 5시에 정확히 기상하여 가게 문을 연다.
그후 간 밤에 쌓인 먼지를 매일 청소해야한다는 귀찮음을 토로하는 한숨과 함께 털어내면서, 한켠에선 바닥을 닦을 물을 받았다.
먼지를 터는 동안 물을 계속 받고 있으면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물이 받아졌다.
청소를 하기위해 받는 물의 양은 물통의 사분지 일로, 오 년전 은퇴 기념으로 놀러갔던 휴양지의 이름모를 골목 어귀에서
관광객을 등쳐먹으려던 골동품 상인과 오랜 흥정을 거친 끝에 사온 손잡이 달린 동이였다.
너무 열정적으로 팔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상인에게 열이올라 고작 동이를 가지고 비싸네 마네 하며 사왔는데, 지금와서 보니 그 자체가
상술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이는 특별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아주 흔한 동이에 불과했다.
물이 받아낸 다음에는 언제나 털어낸 먼지를 대걸래로 바닥과 함께 닦아내며 휴양지에서 즐겼던 여행의 추억을 되새겼다.
언젠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많은 재산이 생기면 다시 놀러가겠다는, 매일같은 다짐과 함께. 벌써 오 년째 결심을 하고 있음에도
그런 날이 오지 않았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둔채로.
옆집 국수가게의 린든이 항상 동이에 물이 남아 가게 밖으로 뿌려야 하는 것에는 대조되게도 자베르가 받는 물의 양은 항상 정확했다.
버릴 물도 없으니 바닥을 닦은 후에는 계산대에 앉아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게 자베르의 일상이었다. 정확히 6시 쯤에 린든이 뿌린 남은 물이
바닥을 치는 소리와, 몇분 뒤 가게 앞 내리막을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고 나면 너무나도 익숙한 아침의 전쟁은 끝이 났다.
오늘의 아침은 조금 달랐다.
아니, 다르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같은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없는 날이었고, 자베르가 그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진행한 간단하고도 지루한 계산 끝에 앞으로 이 년 정도만 더 일을 하면
완전히 은퇴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가게를 연 이후 처음으로 옆집 린든을 꼬셔서 직접 담갔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던 그 술을 한 잔 내오게 했다. 반절을 훌쩍 넘어왔다는 자축의 의미가 강한 한 잔이었다.
은퇴전에도 많이 즐기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면 한 두잔씩 술을 마시던 자베르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물론, 은퇴 후에는 처음이었지만.
그 때문인지 오늘의 기상은 새벽 5시 5분. 어제 마신 술은 평소보다 좀 강한 것 같았다.
'린든 놈, 술에 뭘 넣었길래 이렇게 머리가 아파?'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간 밤의 일을 생각해보니, 린든이 술을 내오지 않으려고하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뭐라고 그랬더라?'
몸에 좋기로 아주 유명한 약초로 만든 술이라고 했던 것 같다. 도수가 좀 강하다는 말도.
숙취는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겪어본 것은 아니었다. 가게를 여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저 흔한 숙취였다.
자베르는 아픈 머리를 집게와 엄지로 꾹꾹 눌러가며 동이를 가져왔다. 벽에 걸려있던 먼지털이로 먼지를 세 번,
장저로 관자놀이를 한 번 쓸었다. 아무래도 몸에 좋기보다는 숙취가 많기로 유명한 약초였던게 아닐까? 좀처럼 욱신거림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술을 마신 날 뒤에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먼지를 모두 털고보니 동이에 담긴 물의 양이 조금 많은 것 같았다. 머리가 아파서 그런건지, 오늘은 그냥 날이 아닌건지. 먼지를 터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나보다. 오늘은 아무래도 린든처럼 남은 물을 가게 밖으로 버려야할 팔자인 것 같다.
가게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는 흔하게 있던 일이었다.
대걸레질이 거의 끝나고 손바닥만한 면적만 치우면 될 때 쯤에 린든의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물을 버리려는 거겠지.
매일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다.
이윽고 린든의 인사소리와 함께 그가 버린 물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자베르의 가게가 있는 내리막길을 울렸다.
매일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다.
국수가게의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자베르는 아주 조금 남아있는 물을 그대로 둘지, 밖으로 버릴지 잠깐 고민했다.
'버리자.'
자베르는 생각했다. 그대로 두면 냄새가 나지 않을까라는 판단이었다.
청소물을 버리지 않아서 나는 냄새에 손님이 가게를 나서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동이를 들고 가게 문 밖으로 나섰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흔한 일이었다.
양손으로 물통을 쥐었을 때, 귓가에 자전거의 벨소리가 들렸다.
매일 듣던 흔한 소리였다.
동이를 떠나 떨어지는 물도, 바닥을 방울진 물들이 때리는 소리도,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자전거의 비틀리는 바퀴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던
소년의 놀란 표정과 조금 크게 뜬 눈도. 브레이크를 꽉 부여잡는 소년의 손도.
모두 흔한 일이었는데.
끼익- 쾅!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