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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6 19: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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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처음에 캠페인 했었어요. 2000년대 초반에 왼쪽은 걸어서 오른쪽은 서서 급한 사람도 배려하고 모두 편리하게 질서를 지킵시다 하면서 지하철에 광고판도 걸려있고 봉사자들 어깨 띠두르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서 홍보했어요.
처음엔 안 지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있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는게 예의라는 것을 남녀노소 모두 지키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효율적인 대중 교통 이용과 질서를 지키는 시민의식의 상징과 같은 것이 되어서 결국 한 줄 서기가 정착했어요.
몇년 그렇게 했더니 편해서 사람들이 좋네 하고 만족하고 다들 잘 지키고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 유지보수에 문제가 생긴 거에요. 오른쪽 베어링이 예상보다 빠르게 마모됐던 거죠. 누군지 몰라도 아마 계산해 보니까 부품 교체비용이 많이 들어서 아깝다 생각이 들었었나봐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정 반대로 태도를 바꾸어서 이번에는 두 줄 서기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시민들은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 하는 캠페인에 이제 더이상 관심을 주고 싶지 않아했고 힘들게 정착한 한 줄 서기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지지부진하자 안전 얘기를 꺼냅니다. 사람들이 민감해 하도록 유지보수 비용 얘기를 직접 하지 않고 안전 관련이다 라고 말하면서 한 줄 서기가 마치 위험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말했어요. 위험한 일이었다면 애당초에 한 줄 서기 홍보를 기획하고 시행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큰 사회 문제가 됐겠죠. 그만큼 문제가 커지지 않으니 별 위험하지 않은 것을 괜히 호들갑 떤다고 짐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시민들은 어느 쪽이 거짓말이었든 관심없고 한 줄 서기 문화 그냥 유지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깃발 따라 이리저리 춤추는 꼭두각시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