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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17: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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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국물 요리가 아닌 음식을 숟가락으로 먹어요. 이건 한국 문화 특징. 일반적인 동양 문화라면 대부분 젓가락으로 먹는게 보편적인 것은 맞습니다. 한국은 예외고요. 박지원이 중국에 갔다가 숟가락이 없고 젓가락만 쓰길래 작은 국자같은 것으로 밥을 먹으려 했더니 중국사람이 중국은 옛날에는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썼지만 당시에는 젓가락만 쓰게 바뀌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 1805) 선생이 청나라 고종(高宗)의 칠순잔치에 참석하는 사신을 따라 지금의 선양(瀋陽)인 성경(盛京)에 도착한 것이 1780년(정조4) 음력 7월 중순이었다. 만주인에 의해 설립된 청나라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연암 선생은 심양에서 쑤저우(蘇州) 사람인 54세의 한족 선비 혹정(鵠汀), 왕민호(王民?)와 그의 친구인 지정(志亭) ,학성(?成)을 만나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필담(筆談)으로 소통했다. 왕민호는 연암이 기하학에 능통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이 그것을 알지 못해 한탄스럽다는 데 공감한다. 얼마 안 돼 밥상이 들어온다. 연암은 밥상 차린 순서를 보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과실과 나물이 먼저 오르고 다음에 떡, 그 다음에는 볶은 돼지고기와 지진 달걀 등이 오르고, 밥은 가장 뒤에 올랐다. 하얀 쌀로 지은 밥과 양곱창으로 끓인 국도 올랐다. 중국 음식은 모두 젓가락을 사용하고 숟가락은 없었으며, 권하거니 받거니 하며 작은 잔으로 기쁨을 나눈다. 우리나라처럼 긴 숟가락으로 밥을 둥글둥글 뭉쳐 한꺼번에 배를 채우고 끝내지 않는다. 가끔 작은 국자로 국물을 떴을 뿐이다. 국자는 마치 숟가락과 비슷하면서도 자루가 없어서 술잔 같기도 하다. 또 발이 없어서 모양은 연꽃의 한 쪽과 닮았다. 나는 국자를 집어서 한 공기 밥을 떠보려 하였으나, 그 밑이 깊어서 먹을 수 없기에, “빨리 월왕(越王)을 불러오시오”라며 무심코 웃었다. 이에 학성이 나더러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월왕의 생김새가 목이 죽 길고 입부리가 까마귀처럼 길었답니다.” 하였더니, 학성은 왕민호의 팔을 잡고 웃느라 입에 들었던 밥알이 튀어나오며 재채기를 수없이 한다. 학성은 이내 “귀국 풍속에는 밥을 뜰 때에 무엇을 쓰십니까?” 하고 물어 “숟가락을 쓴답니다” 했다. 이에 학성은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묻는다. 나는 “작은 가지〔茄子〕의 잎 같습니다” 하고 곧장 탁자 위에다 그려 보였다. 이에 둘은 배꼽을 움켜쥐고 졸도하듯이 웃는다.
이어서 학성은 “어떻게 생긴 물건이기에 가지의 이파리 모양인 숟가락이, 저 밥 속에 구멍을 뚫었을까” 하고 시를 지어 읊조렸다. 이에 왕민호가 대응하여 “많고 적은 영웅의 손이, 마치 한나라의 장량(張良)처럼 임금에게 젓가락을 빌린다고 바빴으랴” 한다. 이에 연암이 “기장밥은 젓가락으로 먹지 않고 남과 함께 먹을 때는 손을 국물에 적시지 않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들어와서 숟가락을 구경하지 못하겠으니, 옛 사람들이 기장밥 자실 때 손으로 뭉쳐서 잡수셨던가요” 하였다. 왕민호가 “숟가락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기장밥이고 쌀밥이고 젓가락을 쓰는 것이 관습으로 굳었답니다. 아침에 배우면 습관이 된다는 말도 옛말이라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하고 답했다. 즉 예전에는 숟가락을 사용했는데 당시에는 그렇지 않다는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