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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9 08: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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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리 가운데 누군가 ‘씨바, 우리가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어 팔면 대박 나지 않겠냐?’라고 의기투합했다고 치자. 자본금도 많지 않으니 처음엔 일 년에 10만 병 정도를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 양조 회사로 출발하는 거야. 물 타기 공법으로 맥주 아닌 맥주나 만들고 있는 국내 시장에 작은 돌풍 정도는 몰고 올 수 있을 거 같지?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맥주 시장에 새로운 경쟁 업체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정부가 막고 있거든. 국내법상 맥주 양조사업에 진출하려면 500cc 기준으로 연간 350만 병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마련해야 사업 허가를 내줄 수 있게 돼있어. 더구나 그 정도 분량의 술을 판매하려면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춰야 하니까 중소 기업은 그 판에 끼어들 수조차 없단 말이야. 독일처럼 소규모 양조 회사 수백 개가 지역 사회에 소량으로 자신들만의 맥주를 유통하는 건 법적으로 아예 불가능하단 말이지.
정부 입장에선 OB랑 하이트 두 회사만 휘어잡고 있으면 손쉽게 세금이 쑥쑥 걷히는데 뭐하러 귀찮게 수백 군데 소규모 양조장을 허가해 주겠어? 세금 추적도 힘들고 귀찮잖아. 수입 맥주에 죽어라 세금 때리면 대다수 국민들을 비싸서 자주 접하지도 못할 테고 OB랑 하이트는 그 덕에 현재 국내 맥주시장의 98%를 싹쓸이하면서 대충 싸구려 재료로 맛없는 맥주를 만들어 팔아도 독과점 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우리가 맛있는 맥주를 먹을 권리 따위는 정부와 독과점 맥주 회사들의 결탁으로 인해 개무시 당하고 있단 말씀.
그럼 요즘 하나씩 늘고 있는 하우스 맥주집(정확한 명칭은 마이크로 브루이어)은 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거야. 유럽까지 유학을 가서 맥주 양조법을 배워온 브라우마이스터(Braumeister. 맥주 제조 기술자)가 직접 맥주를 만들어서 파는 곳을 하우스 맥주집이라고 하는데 정부에선 아주 소량으로 맥주를 만들어 파는 건 허가해 주고 있어.
문제는 이런 소규모 맥주 제조자의 경우는 그 맛을 인정받아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거야. 하우스 맥주집의 시설은 25킬로리터(KL) 이상의 제조 설비를 들여놓을 수 없도록 법으로 막아놓고 있거든. 그러니까 국내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350만 병 이상 만들 수 있는 대기업이거나 아니면 동네에서 호프집이나 할 정도로 소량으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 이상 딴지일보 펌
출처 :
http://www.ddanzi.com/blog/archives/32694
http://www.ddanzi.com/blog/archives/32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