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4
2021-10-15 19:44:54
0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내가 가진 불안은 전적으로 법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법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않고 진실을 담아낼 수 있는 법이었다면 내 안에 형성된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안도감이었을 테니 말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법은 제대로 된 처벌을 포기하길 택하고 말았다. 이 사회의 망종 하나를 걸러내질 못할 만큼, 무능한 사법시스템이였다. 눈 먼 법은,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양심은 상관없으며 무엇보다 아무것도 반성하지 못하는 이들의 목숨을 보호해줄 뿐이었고, 이는 비단 이 사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목을 끌었던 거의 모든 사건을 관통해 온 우리 법의 고질적인 악십이 발현 된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이제껏 쓰레기 같은 판결 앞에 이를 부득부득 갈고 얼마나 많은 가해자들이 이를 비웃어왔는가. 얼마나 많은 오판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허점이 사법제도 하에서 빚어졌던가. 직,간적접으로 '우리 법'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경이 있건 없건 교육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제정신이라면 정말로 누구하나 법을 신뢰하지 못할게 틀림없다.
돈과 같잖은 법이론들에 매몰되어 형평성과 기준이 모조리 무너진 이따위 법은, 도무지 사건을 해결지을 수 없으며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
시월 십오일, 선고날에 하루 지난 오늘은 조주빈이 죽어서 고깃덩어리가 되어 나타났어도 모자랐을 날이다. 그를 단죄해야 한다. 그러나 판결은, 이 비참한 처벌은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죽을 죄를 지었다. 분명히 죽어마땅한 죄를 지었다. 다만 우리 법이 이에 맞는 판결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범죄를 잉태하는 마귀다. 그는 사람이 아닌 사회를 강간했다. 이것이 가감없는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