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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14: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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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도쿄 제국 대학 교수 겸 임시 편년사 편찬 위원에 취임, 시게노 야스츠구 등과 함께 역사서 수집 사업에 참여한다. 재직 중인 1892년, 타 구치卯吉의 권유로 잡지 ‘사카이’((史海)에 전재한 논문 ‘신도와 제천의 옛 풍속’(神道ハ祭天ノ古俗)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두 직책을 사임했다. (구메 구니다케 필화 사건) 1895년, 오쿠마 시게노부의 초청으로 도쿄 전문학교(현 와세다 대학)로 돌아서 1922년(다이쇼 11년)에 퇴직할 때까지 역사학자로서 일본 고대사와 고문서학을 연구했다. 1931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1982년에, JR 야마노테선 메구로 역 앞에 구메의 친아들이 업적을 전시하는 구메 미술관을 열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B%A9%94_%EA%B5%AC%EB%8B%88%EB%8B%A4%EC%BC%80
일본에서는 이것을 필화사건이라고 표현하네요. 저 위키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았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서구로 유학보내는 사람은 그 당시 일본에서 최고 엘리트였습니다. 구메 교수도 그 중의 하나 .. 유학후 당연히 동경대 교수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무엄하게도 천황가를 저따위로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