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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 19: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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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때 첫사랑을 시작으로 적당히 연애의 경험이 있어요.
깊은 통찰력까지는 못갖고 있지만 돌을 보면 돌멩인줄 알고,
보석을 보면 그게 보석인줄은 알 수 있죠.
제가 여자라서 상처를 더 받는 것도, 그가 남자라서 상처를 덜 받는 것도 아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저는 의외로 무딘 타입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의외로 상처를
잘 받고 속으로 삭히는 타입이에요.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저를 대하는 느낌상
연애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노련하지는 않지만 천성이 다정해서 배려가 많은 것이었죠.
일이 많아서 바쁜 날, 미리 전화를 걸어서 오늘 많이 바쁠 것 같으니 연락을 해도 제대로 못 받을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죠. 그래야 상대가 감정 상할 일이 없을테니까요. 그래도 그는 저와 통화가 가능할 때만
기다리고 있더군요.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잠깐 통화라도 안하면 그가 너무 서운해 할 것만 같아서
짧게 2분 정도 밥은 먹었는지, 퇴근은 했는지 정도만 묻고 끊을려고 인사를 하는데 그가 알겠다고 있다가 통화 가능할 때
다시 연락달라고 하고 끊었어요. 그리고 모니터 화면을 보다가 뭔가 머릿속에 팍! 자판 위의 손이 멈춰지는 거에요.
그리고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죠.
"방금 몹시 서운했죠?"
아니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야말로 그걸 이제야 알았냐는 듯한 서운함이 가득했어요.
잠가놓은 주머니의 줄이 풀어져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감정이 밀려오는 듯이
하루종일 보낸 문자에도 대답이 단답형이고 통화를 못해서 목소리도 못들었고 퇴근도 늦어서
얼굴도 못본다고 하고 그는 하루종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게다가 간신히 연결된 통화에도
자신은 뛸듯이 기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보여서 서운했다고 했어요.
그 서운함을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갖은 예쁜 말을 그에게 속삭여주었죠.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나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들게 만들었으니
우선은 내가 제일 잘못이고 나아가 우리 회사가 잘못이다. 하지만 단지 우리 회사는
오빠네와 같은 대기업을 쫓아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뿐이니 나는 미워해도
우리 회사는 좀 더 가련히 여겨 이뻐해주시라. 고 했더니 그는 계속 소리죽여서 웃고 있었어요.
웃던걸 멈추고 짐짓 정색한 목소리로,
"이거 왜 이러십니까, OOO(제 이름)과장님. 지금 제게 로비하시는 겁니까?"
로 엄하게 따져묻길래 기다렸다는 듯,
"로비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약속날짜 잡으시죠. 원하시는 곳에서 원하시는 것으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라며 유혹적인 목소리를 흉내내었더니 방금 전까지 서운한 듯 목소리에 힘이 없던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목소리로 금요일부터 주말을 통채로 약속으로 잡더군요. 대단한 로비(?) 좀 구경하자면서.
주말을 그도 어떤 상상을 하면서 기대했었겠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했던 로비는
그의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 분명했었어요. 그는 그 이후에 제 얼굴이 눈 앞에서 계속 아른거린다면서
이 중증을 어떻게 치료해줄 것인지 계속 요청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