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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12: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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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도 축약된 것이니
더 자세히는 모르는 사안입니다
저때 높으신 분들이 치열한 논쟁을 하기는 하셨네요.
그런데.
신권이 강했을때는 서인의 말이 맞고
신권이 약했을때는 남인의 말이 맞는 논쟁이었네요.
즉 힘에따라서 답이 나오는 논쟁이었네요.
근데 그논쟁에 백성은 없네요.
서인의 말이 맞다면 백성은 어떻게 되고,
남인의 말이 맞다면 백성은 어떻게 되는지가 논쟁이 되었다면.
나라의 주인이 시민이냐?
아니면 의원, 대통령등 선출 권력이냐?
아니면 검찰,법원,언론,재벌등 비선출 권력이냐?
이런 급의 논쟁이 될수 있었겠지만.
현재 역사를 논하는 입장은 아무래도 민중의 움직임을 더 크게 해석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거 같습니다.
저 논쟁은 그당시 다수던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런거는 없네요.
세종때의 세금이 어떻게 걷히면 백성이 어찌된다는 등도 사서에 기록이 되는수준인데.
저 논쟁에 따른 백성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런 기록이 빠졌을리는 없을거 같구요,.
그런 관점에서 뻘짓으로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우용의 역사적관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토론할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