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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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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 파려다가 생각해 보니 방금 이 글을 올렸었구나 싶어서 그냥 댓글로 더 달아보자면, 사실 전 아직 굉장히 멍한 기분입니다.
그냥 지금 이 일이 없었던 일 같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무덤덤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비노기에는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아요.
자캐는 여전히 좋아하긴 하는데 내 머릿속에 구축해둔 내 자캐의 이미지와 설정을 좋아했던 것이지 3D폴리곤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3D폴리곤은 그저 내 머릿속에 구축된 그것들을 만들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했구나 싶습니다. 별로 마비를 켜서 보고 싶진 않거든요. 그냥 머릿속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하고 내가 그리는 그림으로도 충분한 느낌인지라.
마비노기 자체에는 신기할 정도로 관심이 뚝 떨어졌네요.
사실 전 최근 5년간 무언가에 제대로 꽂혔다거나, 열심히 즐겁게 열중할 만한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뭔가 꽂혔어도 잠깐 불타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고 말았구요.
이거다! 하고 즐겁게 노는 것, 열중해 있는 것이 없으니 놀아도 논 것 같지가 않고 휴식한 느낌이 안 들고 공부는 당연히 집중이 안 되고 그렇게 쉬려고 하면 또 뭘 해도 열중할 만큼 재밌지가 않고. 그래서 인생이 참 재미없었어요. 그전까지의 삶이 물 속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물고기였다면 그 5년간의 삶은 물 표면에 힘없이 그저 떠밀려다니는 해파리 시체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래도 그 와중에 중간중간 꽤 불타올랐던 게 마비였어요. 완전 꽂혔다! 까지 간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불타오르지 않을 때도 완전히 차갑게 식지는 않고 계속 따뜻한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법처럼 지금 갑자기 식어버렸어요.
아니 식어버렸다기보다는 사라져버린 느낌입니다. 가스버너로 물을 끓이다가 버너를 끈 게 아닌 버너를 없애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예요.
작년 5월 제 생일날 마게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전 마비노기가 제게 있어 굉장히 의미있는 게임이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오랫동안 봐 온 게임이거든요. 제가 어릴 적에 오빠가 마비노기를 플레이하는 모습을 즐겨봤는데, 그때의 그 여신상 3D모델링이 돌아가는 화면의 로그인 창은 아직도 어릴 적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어릴 적에 본 키홀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로브류 의상을 좋아할 정도로.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보게 된 마비노기 관련 연성물로 인해 마비노기를 제가 직접 플레이를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3년 가량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쩌다 마게를 발견하서 마게에도 들락날락거리게 되고 점점 게임을 알아가면서 평생 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날개도 껴 보고 하늘의 별처럼 여겼던 메릴 헤어쿠폰도 써 보고 과거의 제가 보면 놀랄 정도로 달라져 왔어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며 꼬박꼬박 달라져 온 모습을 체감할 수 있는 건 마비노기 아니면 제겐 그림밖에 없습니다. 오래된 앨범을 펼치듯 훑어보며 내가 이렇게 변해 왔구나 하는 그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기억하는 유일한 것들 중 하나가 마비란 거죠.
그런데 갑자기 마비가 이 꼴이 나니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위에서 계속 말했듯이 제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의욕없던 인생에 그나마 종종 의욕을 넣어줬던 마비가 이런 일 하나 터졌다고 거짓말처럼 식어버렸네요.
그런데 위에서 오래된 앨범에 빗댄 그것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아무래도 전 마비노기보다 마비노기와 함께했던 제 시간과 저 자신을 더 사랑한 것 같습니다.
나오는 대로 아무말이나 썼는지라 역전앞처럼 했던말 또하고 또하고 빙빙돌려 또하는 알아먹기 힘든 글일 것 같습니다만 재검토하고 수정한다 해도 딱히 나아지지 않을 것 같으니 그냥 올립니다.
마비를 접진 않을 것 같아요. 제 마비노기 계정은 여전히 소중하니까요. 다만 마비노기에 대한 애정은 모르겠습니다.
안 접는다고 해봤자 와서 하는 게 친오빠랑 오미 돌고 오빠가 없으면 그냥 자캐 한번 슥 보고 꺼버리는 수준이니까요.
아 진짜 이게 무슨 기분이고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