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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04: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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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저보)' 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조보는 기본적으로 현대의 관보나 다름 없는 것으로 승정원에서 만들어 지방관청등에 배포한 것입니다.
( 조보(朝報) 조선 시대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사항을 매일 아침에 기록하여 반포(頒布)하던 관보(官報)·기별(奇別)·난보(爛報)·조지(朝紙).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 주석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503026_001 )
이는 조선에서 처음 만든게 아니라, 중국등지 에서도 이미 활용하던 제도였습니다. 이런 조보의 기원, 더 나가 현대의 관보의 기원이 로마의 '악타 디우르나' 입니다.
악타 디우르나는 게시만 하기 때문에 조보와 성격이 다르다고 하시는데, 당시 로마의 귀족 및 지방관청에서는 글을 아는 노예를 수도에 파견, 이걸 배끼게 해서 전 로마제국으로 배달시켰습니다. 또 승정원이 처리한 일만 보도하는 조보와는 달리, 오히려 검투경기 결과등 오락적인 내용도 담겨 내용적인 면에서는 현대의 신문에 더 가깝다는 평가 입니다.
그런데 이 조보는, 정부가 하는 일, 하려는 일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보니 민간, 특히 장사를 하려는 사람에겐 좋은 정보원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오랑캐 누구를 정벌하기 위해 병력을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군량을 사재기 하거나 군마를 사재기 했다가 비싸게 팔겠죠?
어디서 치수공사 한다면? 공구나 자재등을 사재기 했다가 비싸게 팔수 있겠죠?)
그래서 이들은 뒷구멍으로 조보를 빼돌리고, 이걸 활자로 복사해 팔기 시작합니다. 새로 만든게 아니라 관보를 그냥 활자로 복사해 판거죠.
(그러다 보니 북방 오랑캐들 손에도 들어가고, 얘들이 이거 보면서 조선의 병력이동등에 대해 알게 되고, 이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고...선조가 열받아서 조보 복사 배포 금지 지시한것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민간, 활자 신문' 이라고 불린다면 틀린 말은 아니라 하겠으나 이걸 '세계 최초의 신문'이라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신문방송학에서는, 악타 디우르나를 세계 최초의 신문으로 생각하는게 정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