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이름이 있어서 급히 수정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6개월째 배낭여행중인 20대 후반 남자입니다.
공부, 해외파견 포함해서 5년 넘게 해외생활을 하게 되었네요. 떠남과 머무름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 좋은 것 같아요.
이제 여행 마무리 단계에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에세이처럼 일기처럼 썼던 글인데 혹시 도움 될까 공유해봅니다.
저도 선배님?처럼 이제 가족과 아이를 갖는 여행은 어떨까 궁금해지는 단계입니다.
#4개월여의 배낭여행 길에서 처음으로 몸이 아파 드러누웠다. 버스에서 쪽잠을 자며 잦은 장거리 이동을 한 탓에 체력이 바닥나 고산병이라는 것에 이렇게 쉽게 무저져 버린 것은 아닐까 싶다. 외교부에서 권장한 소로치라는 약을 먹으니 입술이 마를 정도로 물이 먹히는데 물을 마시면 다시 게워내게 되니 여덟시간 마다 먹으라는 약을 끊고 가만히 앉아 있기로 한다.
함께 투어를 온 사람들이 화산 투어를 위해 떠난 텅 빈 숙소를 둘러본다. 푹 꺼진 침대, 먼지가 뒤덮힌 해진 배낭, 목에 때가 탄 바람막이, 구입 후 2년 간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목도리.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칙칙하며, 무겁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마주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만원 주고 산 못난 겨울 옷들은 한국에선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
다시 할 수 있을까? 만년설이 덮인 날카로운 산맥, 지평선으로 끝없이 펼쳐진 소금 평야, 황금 노을빛으로 물드는 사막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매서운 추위, 고산병으로 인한 두통, 땀에 찌들어도 씻어내지 못하는 그 모든 불편함과 지저분함을 견뎌야 할텐데. 더 많은 정보와 장비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돈을 지불하며 견뎌야 할 직장생활이 있을테니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새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귀찮아지고, 수 백 키로미터를 달려와 마주한 풍경이 커다란 감흥을 주지 못하고, 처음 먹는 음식이 주는 당혹함이 불편해지는 일이 많아지면서, 장기 여행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
실제로 여행길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것들은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반성과 화해, 그도 수 없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 했을 부모님에 대한 이해, 윤소라 성우가 읽어주는 소설을 음미하는 법 같이 꼭 저 지저분하고 커다란 배낭이 없었어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계획했던 일년여의 여행을 몇 달 앞당겨 돌아가도록 귀국 일정을 변경하면서 생각한다. 이만하면 됐다.
신간 <담론> 북콘서트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추운 겨울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독방 안으로 들어오는 신문지만한 햇빛을 무릎에 얹고 책을 읽으며 얻는 행복감으로 20년의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커다란 비극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작은 기쁨. 천박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삶의 작은 행복. 언젠가 ㅇㅇ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도 여행이 아닐까' 하시던 것을 이해 해보려 한다. 여행이 일상이 되면서 내가 잊어버린 것이 뭘까?
그래. 고통 속에서 기꺼이 기쁨을 맞이할 마음가짐. 그것을 내가 잊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찾아,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의미있는 생각을 찾아 안달하며 배낭을 메고 떠도는 삶이 아닌, 내게 주어진 일상에서도 새롭고,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그렇게 살고싶다.
2015년 6월 24일
우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