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2015-03-07 16:24:39
41
저 위쪽에 대한민국 역사상 호남이 발전한 적이 '백제' 때 잠깐 외에는 없다고 하는 말 때문에, 잠깐 댓글 답니다.
너무 근시안적인 발상입니다. 호남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것은 불과 수십년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근대 문물 즉 공업이 발달되지 않았을 뿐이지, 호남은 5천년 한민족 역사 중 가장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호남의 김제평야, 나주평야는 조선팔도의 최고 곡창지대로 꼽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곧 근대화 직전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지주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지요.
일제시대에도 전북의 군산과 전남의 목포를 통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쌀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군산과 목포의 정미소나 선창가에서는 개새끼도 지전(종이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조선 팔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으로 꼽혔었지요. 이런 분위기는 불과 몇 십년 전인 6, 70년대까지 지속됩니다.
6,70년대부터 현대이 공단과 공장이 특정지역에 건설되면서, 농업이 천시되는 풍조가 생겨나지요. 때문에 서울로의 상경도 많아져 인구감소가 커지게 됩니다.
백제는 물론이고, 후백제, 고려시대, 조선시대 통틀어 물산이 많은 곳은 단연 전라도가 꼽혔습니다.
조선시대 각 도의 물산과 세금을 살펴볼 때,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서북지역(평안도, 함경도)이 가장 궁색한 행정을 유지하고 중앙의 지원을 받았을 뿐이며, 경기도를 비롯한 각 도의 잉여생산물로 각 고을의 자체 행정을 조달할 뿐이었습니다.
오직 경상도와 전라도의 생산물이 모든 고을의 행정을 유지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경상도 같은 경우, 물산을 유통하여 남은 경제적 이득은 왜구를 견제하고 방비하는데 많이 소요됐습니다. 반면 호남의 물산은 넉넉하고 풍족하여 삼남은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유지비용 및 서북이역의 국방비로도 사용됩니다.
19세기 이전까지 모든 경제활동이 농업을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호남은 물산이 풍부하고 빈민이 적은 까닭에, 음식문화가 풍성하게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로 인한 풍류와 놀이문화가 발전하게 됩니다.
위의 몇몇 분이 호남의 낙후된 경제사정을 어필하기 위해 강조아닌 과장을 한 부분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어 몇 마디 첨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