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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5 17: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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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꿈을 꾸면서 꿈이라고 자각한 적은 없지만 조금 특이한 꿈을 꾼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주위 환경으로 인해서 두통이 굉장히 심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앞이 벌개지다가 새까매지면서 눈알이 빠질 듯한 통증에 시달렸었죠.
어느날 휴일에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을 꿨습니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법한 키 큰 전나무가 울창한 안개낀 숲을 마구 달려가고 있었죠.
새벽녘처럼 어슴푸레한 산 정상을 가끔씩 돌아보면서 헉헉 대며 도망치고 있는데, 갑자기 푸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하얀 두루마기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제 앞에 내려 서더군요. 그리고 나서 엄하게 저를 혼냈습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째서 목표로 한 일을 다 이루지 못하고 도망가냐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도저히 수도승같은 생활은 못하겠다, 제발 살려달라, 너무 힘들고 괴롭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그 하얀 두르마기 입은 사람이 문득 표정을 풀면서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두번 두드리는데, 마치 수박통이 텅-텅- 하고 울리는 것마냥 소리가 깊게 났더랬죠.
그리고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랑 같이,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청량감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쏴---하고 느껴지면서 꿈에서 깨어났어요.
그 뒤로 두통을 거의 겪지 않게 되었는데, 그 때 느꼈던 청량감은 근 10년이 지나도 한 번도 느낄 수가 없네요.
아마 전생에 저는 절에서 도 닦다가 도망친 못난 불초제자였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