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2014-10-04 13:10:22
57
구경꾼 입니다.
저 아래 산울림 김창완씨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 글을 씁니다.
김창완씨의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할말은 없으나, 최소한 산울림 음악을 나름 알고, 해당 인터뷰 당시 산울림 및 김창완씨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관계로, 아래 글에 50 개가 넘는 불편한 댓글들을 보고 한마디 거듭니다.
해당 인터뷰는 98년 1월 Sub 라는 잡지에 실렸던 내용인데, 제 생각에는 인터뷰어였던 박준흠씨의 무례한 질문에 김창완씨(이하 존칭 생략)가 행한 '고의적인' 대답 내용들이 여과 없이 실려있는 글입니다.
http://www.subweird.net/sub/a_article/9801/stext_02.htm
(저작권에 문제가 될까봐 퍼오지는 않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면,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준비없이 인터뷰함을 넘어서, 기본적인 예의없이 자기의 얄팍한 지식이나 자랑하고 있고, 심지어 무례하기 그지 없는 질문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루 리드 얘기를 꺼내면서 김창완에게 "사실 루 리드를 모를까봐 걱정도 했다" 라고 하지 않나, 산울림의 초기 앨범의 오르간 사운드에 대해 산울림과 상관없는 김효국 (하늘바다 및 그룹 11월의 키보디스트) 의 오르간 연주는 어떻게 구상한 것이냐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 (산울림 초기 앨범의 오르간 부분은 김창완의 사촌 동생이 해준 연주 입니다) 느닷없이 커트 코베인의 자살을 얘기하면서, "김창완씨는 갑작스런 성공에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이런 네가지 없는 질문을 하고, 또 20 년 경력의 가수 앞에서 70년대 음악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나.. 자기를 천재로 생각하냐고 질문하지 않나... "스스로는 예술가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무례한 질문...
결국은 참다 못한 김창완의 답변은 다음과 같은 식이 됩니다.
Q. 국내 대중음악에서 신선함을 느낀 적이 있었나요?
A. 아니요.
Q. 그럼 마이너 성향의 음악은 좋아하십니까?
A. 요새 펑크 밴드들의 음반은 다 좋아합니다. 언니네 이발관, 성기완, 크라잉 넛, 황신혜밴드, 어어부밴드를 좋아합니다.
Q. 80년대의 헤비메틀과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은 들었나요.
A. 아니요.
Q. 거의 이런 장르와 상관이 없나보죠?
A. 솔직히 저는 산울림의 음악과도 상관없어요.
전문가 행색을 하는 어설픈 인터뷰어에게 김창완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대충 견적이 나오지요. 재미있는 것은 초보 시절의 박준흠이 이런 인터뷰 내용을 가감없이 기사로 썼다는 것....
사실 이러한 분위기의 김창완 인터뷰는 가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은 (기본이 안되어 있는) 인터뷰어들을 골려주는 반어법이나 역설법들이 숨어 있는 고의적인 김창완의 답변들일 가능성이 100% 입니다.
참고로, 산울림의 팬이라면 아시겠지만, 산울림의 1 집 앨범은 전곡이 가사 심의에서 문제가 되서 수정된 곡들입니다. 예를들어 '아니 벌써' 같은 경우는, '술에 떡이 되었더니 통금이 되었구나' 등의 내용이었는데, 가사가 심의에 걸리니, 반어법으로 정반대의 가사 내용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표현의 자유'에 대해 논하자고 하면 민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다음은 해당 인터뷰에서 박준흠이 '90년대 펑크 컬쳐'에 대해 질문하자, 김창완이 대답한 내용입니다.
아주 종합적이고 도발적인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자니까 부담스럽고 언어가 적합하지 않네요. 그 단어를 인플레이션 시키는데, 정말 개인적으로는 거지를 동경해요. 사회가 정교하게 짜이면서 근본적인 욕구가 짓눌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욕구들이 삐져 나가요. 70년대 우리 사회는 삐진 싹이 보이면 싹둑 짤라 버렸는데, 그것도 매일 아침 면도했죠. 지금은 조금 삐죽 나와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지만. 그런데 인간적인 잠재욕구를 누가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펑크가 있죠. 펑크는 그 당시 섹스피스톨즈가 나와서 생겨난 일도 아니죠. 세상이 그 사람들을 계속 거세하는데도 그네들이 상당한 인구증가를 기록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 집시 죽이듯이 죽이겠죠. 아니면 그네들한테 학력을 제한해서 돈을 못 벌게한다든지 하면 도태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욕구가 없어지겠습니까? 지금 나도 있는데.
이것이 김창완이 생각하는 70년대식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시각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는 '다양성' 을 존중하였으며, 음악이 정치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반대했고, '가사 심의' 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심의를) 피해가면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기자들의 무례함'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모르게 '디스' 하는 능숙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