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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3 13: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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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슈를 비유한 글인데, 읽어볼만한 것 같아서 모셔왔습니다.
윤종신은 곡도 쓰고 노래도 한다. 신승훈도 그렇고 김종서, 서태지도 그렇다. 그 밖에도 그런 사람은 꽤 많다. 하지만 전체 가수중에서 따져보자면 이들은 소수다. 어느 날, 가수협회에 등록된 모든 가수들에게 공평하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이들 겸업(?)가수들에게 자기가 쓴 곡은 자기 스스로 부를 수 없게 한다는 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이제 우린 윤종신의 노래를, 신승훈, 김종서, 서태지가 더 이상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참 기가 차지 않은가. 어떤 놈의 발상인지는 몰라도 더 이상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팬들은 당장이라도 몰려가 데모를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음악인과 팬들은 당장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이건 건축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계자가 감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 막 통과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안심도 하지 마시라. 이 동네에서 벌어진 일은 똑같은 논리로 다른 동네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머지않아 음악인들은 노래를 부를 수 없고, 변호사들은 사무장들을 통해서만 사건을 수임할 수 있으며, 내 권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정당에서 지정해 주는 사람으로만 강제될 것이다. 아, 마지막은 이미 그러고 있구나.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오늘 이 사단이 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름대로 투쟁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겠다. 절대 현장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초정밀한 도면을 그리고 시방서를 도면보다 더 두껍게 적어낸 뒤, 그 내용을 숙지하지 않거나 현장에 반영시키지 못한 감리에게는 민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감리계약에 넣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을 맡은 감리 모두가 재산이 탈탈 털리도록 하면 되는 거지.
설계자가 감리에 나가면, 심지어 타일 사이 백시멘트의 질감과 걸레받이 모양까지 따져서 현장에 반입을 시키고 어디에는 실리콘을 치고 안치고 까지 꼼꼼하게 지시하느라, 설계 두달 하고 감리 6개월 하는 현장이 수두룩 한데, 외주 줘 버린 감리는 기초 칠때 한번, 중간층 한번, 지붕칠 때 한번 와서 철근 배근 잘 됐는지 보고 가는게 전부인거 다 안다. 애초에 그것도 참 웃기는 설정이었다. 배근은 구조기술사가 보고 갈 일이지 왜 건축가가 감독하게 만드나. 골조는 보는데 배관이나 분전반 같은 건 왜 안보게 하나. 하긴 볼 줄도 모르지만. 그 만큼 감리제도라는게 법으로는 엉성하게 형식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근 쪼가리 몇개에 책임이 있는 법적 감리와 건축물의 모든 곳에 책임이 있는 설계자는 감리라는 행위의 수행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50명을 한번에 관리하는 학원 선생님과 그 학생 하나하나의 부모들, 그 둘 중 누가 자식관리에 더 열심히겠는가.
설계자 현장에 못나오게 해 놓고, 현장이 참 잘도 굴러 가겠다. 설계자가 아예 현장에서 숙식을 해도 겨우 될까 말까한 것이 품질인데 법을 저 따위로 만들어 놓고 있으니, 정말 열받아야 할 것은 건축주들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내 건물의 품질을 나쁘게, 비용을 높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법이 지금 법사위에 올라가 있다고 한다.
-이삼화 Studio GOTT Architects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