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7
2020-09-28 19:21:13
1
비가 억수로 오던 날이었지요.
그 날은 개교기념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우산하고 채변봉투를 손에 쥐어주시면서
"형이 이거 안가져갔다. 우산 가져다 주는 겸 갔다와라"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버스 4정거장은 족히 되는 거리였는데 여튼 출발했습니다.
뭐 스마트폰이 있길 하나요 전화가 되나요. 기억을 더듬어 형 반이 있는 곳에 찾아갔습니다.
형은 중1였고, 저는 5학년.
창문으로 빼꼼 들여다 봤는데 형이 어디 앉았는지 안보이더군요. 그러다가 1분단에 있는걸 보고
'형~ 형~' 했습니다. 무려 수업 중에 말이죠.
담임한테 딱 걸렸네요.
들어오라 해서 들어갔는데... 무슨 일로 왔느냐고...
"이거 형 전해주러 왔어요. 우산하고 채변봉투"
그 담임도 미친넘이죠. 봉투를 뺏어들고는 형이 얼굴이 시뻘개질 때 까지 놀리더군요.
"야 야들아 ㅇㅇ동생이 채변봉투 가져왔다는구나 ㅋㅋ"
그 당시는 그런 또라이 상또라이 선생들이 많았더랬죠.
그러더니 저 보고 노래를 시키는겁니다?
저는 진짜 죽을만큼 부끄럽고 형은 이글이글 불타면서 죽일 듯 노려보고 있고...
거기서 무슨 노래가 나와요?
송아지였나 학교종이 땡땡땡이었나 뭔가 부른 기억이 나는데 울면서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냥 무작정 쪽팔려서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미친 선생이었습니다.
형은 그래도 한대 쥐어 박으면서 '왜 들켰냐' 쉬는시간 까지 좀 기다리지 그랬느냐며 별 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산 쓰고 그러고 집에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