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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2015-06-29 22:14:19 0
이괄의 병력이 망실된 게 대청전쟁에서 치명적이었다 하는데 말입니다. [새창]
2015/06/27 11:20:05
인조의 무능함 역시 병자호란의 큰 원인이나, 그런식으로 복합적으로 사건을 따지면 무의미한 IF 놀음에 불과합니다. 첨언하자면 지휘관 인선에선 이괄의 난 없었으면 이괄이 사실상 총대장이라고 봐야합니다. 즉 이괄의 난 없었으면 김자점 김경진이 북방사령관으로 올일이 없었다는 이야기. 물론 자기 따르는 애들도 못챙기는 인조 수준상 뭐,..
294 2015-06-29 15:09:53 0
내 소중이는 ‮ .다이 mc [새창]
2015/06/28 21:47:51
이분 여자분이신데 크기가...
293 2015-06-28 23:17:40 1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jpg [새창]
2015/06/27 17:47:46
저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밖에 안나옴. 오지랍도 넓다. 개인의 성적 취향은 뭘 해도 자유라고 생각함. 남에게 피해만 안 준다면. 성인 둘이 합의해서 한다면 그게 동성애든 뭐든 남이 상관할 바가 아님. 근데 저 여자애 누구에욤?
292 2015-06-28 22:46:43 1
영화 연평해전을 보면 김대중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새창]
2015/06/28 10:15:54
위키백과 링크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2%EC%97%B0%ED%8F%89%ED%95%B4%EC%A0%84

제2연평해전 유족은 3천100만~8천100만원의 일시금을 받았고, 38~86만원의 유족연금과 61~62만원의 보훈연금을 지급받게 되었다.[36] 이것을 두고 보수 단체에선 정부와 여성부를 보상금 지급량이 너무 적다는 문제로 비난한 바 있으나, 이당시 정부는 전사자에 대한 법 규정의 문제로 보상할 수 없었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당시 군인연금법으론 순직과 전사가 구분되지 않아 포괄적인 개념의 공무원 사망자로 규정, 전사자로 취급받지 못해서 추가 보상이 불가능했다.[36][37] 따라서 정부는 우회적인 방안으로 국민성금을 해서 전사한 6명의 장병에게 정부 지원금 포함 해서 도합 3억5천만원의 보상금이 전달되었다.[38]

문제가 된 국민연금법은 당해인 2002년에 연금법 개정 법안을 발의하여, 노무현 정권 시절 2004년에 개정되어 전사와 일반 공무에 의한 사망이 구분돼서 전사 처리가 가능해졌으나[36]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겐 소급 처리가 되지 못하였다.[37][39] 이에 따라 제2연평해전 유가족은 전사자 사망 보상금 2억 원을 받지 못하고 3000만~6000만 원 규모의 공무 보상금을 지급 받는데 그쳤다.[40]

해당 국민연금법은 박정희 정권 시절 베트남전시 전사자가 많아지면서 국고의 고갈을 걱정한 박정희 정부는 교전 중 사망은 공무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하고 사망보상금은 사망 직전 받았던 월급의 36배로 못박아 국가로 하여금 그 이상 지급할 수 없도록 했다.[38] 추가로 1967년 국가보상법 2조를 제정, 직무수행중 입은 손해에 대해 보상을 받은 경우, 국가가 잘못이 있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 1971년 대법원은 "군경과 민간인 혹은 군경과 다른 공무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조항" 이라며 위헌결정을 내렸으나, 박정희 정권은 위헌결정을 낸 대법관에게 압력을 가해 퇴진시키고, 유신헌법을 발효해 이중배상 금지 조항을 헌법에 추가하였다.[41] 해당 헌법에 따르면,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등은 국가에게 받은 손해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보상 이외의 배상은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38] 따라서 제2연평해전 사망자들은 더 이상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제2연평해전 희생자에게 전사자 사망 보상금을 소급 지급하려면 특별법을 제정할 수 밖에 없다" 고 밝혔다.[42]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연평해전 희생자에게 전사자 예우를 하는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었으나, 무산되었다. 10월 14일 국방부 예비역정책발전TF팀은 공문을 보내, 제2연평해전 희생자에 전사자 예우를 해줄 수 없다고 통보하였다. 해당 공문에서 "각종 대침투작전과 국지전, 북한 도발에 따른 아군 전사자 등의 형평성 침해논란이 예상돼 법적 안정성 등을 위해 소급보상이 불가하다"고 밝혔다.[40][43]
291 2015-06-28 22:44:32 2
영화 연평해전을 보면 김대중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새창]
2015/06/28 10:15:54
그게무슨상관 //
1. 한국 NSC 설립시기 : 1963년 12월 17일
2. 김대중이 그 내용 규정하기 이전에 그 내용이 있엇음.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209966 이 준(李俊) 국방장관은 서해교전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4대 지침'으로 인해 우리측 피해가 컸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김 대통령이 99년 연평해전 기간에 4대 지침을 내렸지만, 이는 97년 작성된 합참 작전예규에 이미포함돼 있었으며 교전규칙의 기본정신에 따라 작성된 것이지, 햇볕정책때문에 추가되거나 수정된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3. 정부 차원에서 위로금을 줄 수가 없음. 위키백과 참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며, 법에 의한 통치가 기본임. 연평해전 위로금 못준건 박정희 시대 유산임. 그 위키백과 내용 내가 작성한거
4. 개인적 소감이므로 반박 가치 없음
290 2015-06-28 09:30:03 0
백제가 당에 대해 국교 단절만 선언하지 않았어도 멸망은 피할 수 있었죠. [새창]
2015/06/26 11:24:26
솔직히 결과론적 관점에 가깝습니다.
고구려가 그렇게 허망하게 내분으로 몰락할줄 누가 알았겟나요.
289 2015-06-28 09:23:50 1
이괄의 병력이 망실된 게 대청전쟁에서 치명적이었다 하는데 말입니다. [새창]
2015/06/27 11:20:05
청군은 비록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임을 부정하진 않습니다만, 국가간의 전쟁의 승패라는건 그런 단순한 실력 싸움이 아니죠. 병자호란때 왜 청군이 그런 속공 전략을 썻겠습니까? 조선은 청나라의 메인 타겟이 아닙니다. 메인 타겟은 중국이죠. 대몽항쟁이 일어날 수 있엇던건 몽골이 모든 영토를 정복해서 남은게 고려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는 사정이 다르죠. 아직 명나라가 살아있는데 풍족한 명나라 두고 조선에 시간을 질질 끌 이유가 있습니까? 조선에 병력을 팍팍 투입할 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북방군 살아 있엇더라면 그런 속공 전략이 무너지고, 조선에 병력을 낭비하기 싫은 청나라는 조선에 대해 유화책으로 대응했을 거라고 봅니다. 명나라 싸우기도 바쁜데 조선 치면서 병력을 낭비하는건 청군에게 최악의 선택이니까요.
288 2015-06-27 19:48:51 0
국회법개정 거부로 확실해진 나의 의심 [새창]
2015/06/25 19:56:57
다른 사람은 모르겟고 유승민은 절대 박근혜에게 반기 못 듭니다. 유승민 지역구가 어딘지 아세요? 대구 동구 을입니다. 박근혜가 나가면 껌벅 죽는 대구요. 박근혜가 기침 한번만 해도 난리가 나는 그 대구요. 대구지역구 정치인이 박근혜에게 딴지를 놓는다? 정치 인생 말아먹는겁니다.
287 2015-06-13 21:31:52 0
상소문 사대주의 비난 금지가 적절한가 [새창]
2015/06/13 20:22:28
한량011 // 제 주장은 외교의 사대주의는 비난하기 어려우나, 정치 경제 사회의 사대주의 적 현상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사대주의는 16세기 이후 조선 지배층 전체가 드러나던 사상입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사대주의 비판한 실학자들의 역사서가 등장하죠. 유득공 안정복 같은 분들이요. 문제는 이분들이 조선 지배층이었나요? 전혀 아니라는 거죠.
286 2015-06-13 21:24:27 0
상소문 사대주의 비난 금지가 적절한가 [새창]
2015/06/13 20:22:28
Lemonade // 포장이 너무 지나치시네요. 겉핱기로 배우셨던가.

1.광해군은 청과 매년 사절을 주고받았고 인조는 해당 사절을 완전히 절단한것은 아시나요 외교가 이어졌다는 것은 지나친 포장입니다.

2. 주자학 이외에는 모든 사상을 거부하는 주자학의 교조화 현상으로 나타난 주자학만 깊어지는걸 저런 포장도 가능하군요. 저런 현상이 일어난건 주자학 이외에는 교조화 수준으로 발달해버려 아예 주자학 이외의 모든 것을 사문난적으로 짤라버리니 주자학만 깊어져서 나온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황 이이시절이면 모를까 노론시절을 전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3. 서원이요? 서원은 단순한 사교육 기관이 아닌 지방 양반 세력의 근거지일 뿐입니다. 시우랑 결합한 서원은 폐단이 넘쳐나는 곳이었죠.

4. 규장각이 주자학 덕이라는건 여기서 처음듣네요. 규장각에 들어간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사림의 거두? 아니요. 정약용 유득공 박제가 등이 중심 규장각 인물입니다. 이분들이 주자학의 거두같나요? 아니요. 실학자 같은 주자학을 비난햇던 분들입니다. 애초에 규장각이 성리학 치우친 조선 중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진보적 학자들을 모아서 붕당 비대화 막는 정치용도인데 거기다 주자학을 끌어들이면 어쩝니까

5. 정조의 책이요? 정조가 발간한 책 리스트를 기억하고 있나요? 거기에 주자학이 메인인 내용은 "춘관통고" 라고 예서를 집대성한 책밖에 없습니다. 주로 책 내용이 뭐냐고요? 홍재전서, 일성록 같은 자서전 형식 책이나,고금도서집성같은 백과사전, 그리고 외교문서(동문휘고) 정사기록(내각일력) 같은 책입니다.

6. 소중화 사상이 그런 쪽으로 같으면 비난을 안 받앗겟죠. 사상의 변화나 구체적인 새 중화 사상에 대한 실력 기르는 문제가 됫으면 말이죠. 그거 하나 없이 자뻑과 예법으로 소중화를 우겻으니 문제입니다.

7. 숭명배금의 일환으로 청에 보내는 사절을 그만둔건 위에 있고, 청 사신 용골대를 추방한 기록이 있습니다. 배금이 안 일어났다는건 그냥 생각일 뿐이죠.정묘호란으로 탈탈 털린 이후에도 배금 정책은 계승되었습니다. 인조실록의 문구로 증거를 대신하죠. "명나라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요, 오랑캐는 곧 부모의 원수입니다." "차라리 나라를 없어질지라도 의리는 저버릴 수 업습니다. 또한 어찌 이런 시기에 화의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285 2015-06-13 21:01:38 0
상소문 사대주의 비난 금지가 적절한가 [새창]
2015/06/13 20:22:28
한량011 // 불행히도 "일방적" 이란 말은 너무나도 주관적인 단어선택입니다. 저는 그게 충분한 방어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284 2015-06-13 20:40:35 4
이 사진 두장으로... 이야기가 많네요 . [새창]
2015/06/13 20:32:00
피라미드는 원래 중국에도 있던 문화입니다. 진시황의 영묘가 대표적 피라미드죠. 물론 그걸 가지고 이집트까지 연결짓는건 무리수입니다. 한국 고대사와 연결지을만한 건 3황 5제중 하나인 소호의 능인데, 소호가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는 정도입니다.
283 2015-06-06 13:11:24 0
병원에 갔다오니 학교에서는 메르스 환자라는 소문이 도네요.. [새창]
2015/06/06 13:05:55
정부의 비밀주의 덕이죠.
님이 메르스 환자인지 아니면 멀쩡한 사람인지 정부가 확인해주고, 사람들이 그걸 믿어야 하는데
정부가 안 알려주니 정부 발표보다는 각종 소문을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고, 그중 하나가 님이 감염자라는 소문이죠.
282 2015-06-06 01:10:53 0
요동정벌설은 그렇게 까일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창]
2015/06/05 18:49:01
요동정벌은 음 명분은 원치겟다고 간겁니다.
간다면 제 말은 저 국내성지역쯤 되겟네염.
뭐 저라면 함경도 먹는다니까요..

글구 그때까지 북원은 망해가고 있엇지만 남아는 있엇습니다.
281 2015-06-05 18:40:48 0
이제 서북청년단을 미화하는 불쏘시개 책이 대놓고 등장함.jpg [새창]
2015/06/02 07:54:24
서북청년단의 깽판은 싹 무시하고 반공하니 공산당 반대했으니 잘햇음 이런 수준의 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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