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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3: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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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라는 시는 1938년 3월 27세의 나이에 발표한 시로, 당대 최고의 인기작품이었죠
그리고 저 시 속에 나타샤라는 인물의 모델은 김영한이라는 분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영한은 열여섯 살에 집안이 몰락하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스스로 한성 기생
'眞香(혹은 자야)'이 되었고. 가곡과 궁중무를 배워 권번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잡지에 수필을 발표하며 미모에 시와 글, 글씨, 그림, 춤, 노래 등 다재다능한 기생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스물세살때 김영한은 흥사단과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던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스승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 함흥감옥을 찾아가지만 면회를 거절당합니다.
하여 그녀는 함흥기생이 되면 지역유지의 도움으로 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시 기생의 길을 택하고
그렇게 살아가던중 백석을 만나 사랑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백석 집안의 반대로 두분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백석은 집안에서 강요한 결혼식에서 도망쳐
김영한과 함께 떠나고자 했으나, 백석의 불행을 염려한 김영한의 반대로 결국 백석 홀로 만주로 떠나게 됩니다.
광복이후, 백석은 함흥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서울로 돌아간 김영한과는 한국전쟁의 발발로 다시 만나지 못했죠
김영한은 평생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하며
백석은 북한 체제 하에서 1995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편, 김영한은 서울에서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한국 화류계의 대모가 됩니다.
그러던중 1997년의 어느날.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김영한은
사재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는 한편
당시 시가 1000억원에 달하는 7000여 평의 대원각 대지와 건물 40여 동 등의 부동산을 법정스님을 통해 기증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절이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입니다.
이정도면 푸르딩딩 될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