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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00: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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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대왕은 경기병대로써의 후사르의 가치를 인정했고, 자신의 경기병 연대로 '후사르' 들을 대거 편성하기 시작한다. 1741년 폴란드 탈영병과 헝가리인들로 5개 연대를 편성한 것을 시작으로 1744년, 1745년 프러시아인들로 구성된 후사르 연대도 여럿 편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 투입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들 후사르 연대들을 척후임무 및 적 전열의 측후방 타격에 활용했고, 매우 활용도가 높았으며 프리드리히 대왕의 승전 중에는 이들 후사르 연대들이 가져온 첩보 및 측후방 타격에 의한 것도 여럿 있다. 때문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후사르 연대들에 대한 대접은 매우 좋아서, 헝가리의 전통 복장을 착용하는 것도 허용했으며 프러시아군의 일반적인 체벌 대상에서 후사르 연대는 제외되기도 했다.
이러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성공은 다시 유럽 각국의 프리드리히의 전술적 추종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로인해 후사르는 전 유럽으로 널리 확산된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성공 이후 후사르는 유럽 전역으로 널리 확산되어 사실상 나폴레옹 전쟁시기가 되면 사실상 경기병 = 후사르 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시기에 유럽 각국은 경기병 전부를 후사르로 전환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는 모든 기병을 후사르로 통일시키려는 모습까지 보여, 드라군 연대나 퀴레이서 등을 후사르 연대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기병의 위상이 보조병과로 내려앉으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중기병 병과는 더이상 필요없다는 것을 인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나폴레옹은 동유럽에 잔존해 있던 창기병 병과를 대거 영입해 조직화했고, 이들 창기병(Lancer)들이 후사르와의 기병전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일시적으로 창기병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러나 범용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류는 되지 못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B%84%EC%82%AC%EB%A5%B4
그 거의에서의 예외가 나폴레옹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