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적우의 생존, 배후를 의심받는 이유>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과정에 참여하는 수많은 기획자들, 방송 촬영을 수행하는 다양한 스텝들, 전면에 나서서 시청자들과 접점을 만드는 출연자들, 그리고 그 내용을 편집을 통해 갈무리하는 제작진들까지. 하나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조화를 생각하다면 오직 단 한 사람 때문에 특정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망한다는 칭찬이나 지적은 과도한 것입니다. 두드러지는 장점이 있다면 수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더더욱 빛이 나는 것일 터이고, 확실한 문제가 생긴다면 그런 아쉬움을 보완하지 못하는 이들의 역량 탓이기도 하니까요. 결국은 연대 책임.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는 그것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의 책임이자 결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지금의 나는 가수다가 겪고 있는 꾸준한 하락세는 특정인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등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논란과 불만의 대상인, 특이한 무명 가수. 적우에 대한 지적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이 다 그녀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가혹할지는 모르지만, 전 그녀의 생존을 가져온 모든 조건들이 시청자들이 나가수를 외면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순간의 결정적인 국면 때문이 아닌, 그녀를 둘러싼 여러 요인들이 차근차근 쌓여진 결과라는 것이죠.
그녀가 지금까지 나가수에서 소화했던 곡들의 목록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윤시내의 ‘열애’로 첫 무대를 장식했던 그녀는 김완선의 ‘나 홀로 뜰 앞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 이의 꿈’,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그리고 이번 주에는 김현식의 ‘어둠 그 별빛’을 소화했습니다. 이 일련의 목록들에서 어떤 공통점들을 느끼실 수 있나요? 적우의 선곡 목록들은 30~40대 남성들의 향수와 추억에 강렬하게 접점을 가지고 있는 곡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곡은 단 하나.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밖에는 없습니다. 그 곡 역시도 허스키한 자신의 음색에 유리한 선곡이었죠.
그 곡을 선호하는 나이와 대상이 한정되어 있는, 그녀가 룸살롱의 마담이었다느니 하는 루머, 혹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그런 장소에서 일을 했기에 그런 곳에 출입하는 중년 남성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곡들에 익숙하다는 폄하나 그런 곡들만 골라서 불렀다는 공격을 하기 위한 지적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잘할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자신의 전략이고 현명한 행보이니까요. 출연 가수들에게 무리한 변화를 요구하거나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입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무대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무난한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변화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죠. 탈락을 결정하는 두 차례의 경연 중 첫 번째 선곡이 자율이라는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적우의 등장 이후 두 번째의 랜덤 형식의 선곡 역시도 일정 주제를 제시할 뿐 가수 자신의 선택에게 맡기는 자유도를 허락했습니다. 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적응과 해석이 필요했던 두 번째 경연은 이로서 첫 번째의 자유 선택과 별 다른 차이가 없어졌어요. 때문에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리라 기대하지 못했던 의외성과 놀라움, 다양함의 재미는 점점 더 사라져 버렸습니다. 매주 그들의 노래들이 다 밋밋하고 무덤덤한. 특정 가수들의 몇몇 곡들이 화제에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굳이 출연 가수들의 모든 무대를 보지 않아도 되는 무난함이 시청률 확보를 위한 채널 독점력을 떨어뜨린 것이죠. 그녀의 비슷한 성향의 곡 선택은 바로 이런 선곡에서의 의외성 상실 덕분에 가능했었어요.
거기에 더하여 적우 이후 새롭게 참가한 새 얼굴들의 면모는 이전 나가수가 섭외했던 이들의 무게감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관록의 신효범이나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는 박완규 같은 짐작할 수 있는 선택도 있었지만 광탈의 굴욕을 맞본 테이나 이번 주 새롭게 참가한 이현우의 경우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후보군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의외의 가수들입니다. 적우의 생존은 김연우조차도 등장하자마자 탈락시켰던 나가수 리즈 시절의 치열함보다 훨씬 더 느슨해진 라인업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금 나가수에서 이 사람의 무대를 볼 수 있다니 라는 떨림과 설렘으로 일주일을 기다리게 해주는 가수가 과연 얼마나 있나요?
이 모든 변화가 적우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제작진의 음모라고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망상입니다. 하지만 그녀 한 사람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긍정적인 조건들로 변화하며 한 사람을 살리고 나가수 전체는 죽어가는 지금의 상황이 그 배후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생면부지였던 그녀를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이러한 조건들이 나가수에 긴장감과 활력, 기대를 감소시킨 것만은 분명합니다.
색다른 도전 없이 비슷한 성향과 시기의 곡들을 소화하면서, 이전 신들의 경연이라고 불리던 시절보다 훨씬 헐거워진 무대에서 경합을 벌이는 지금. 적우도 살아남을 수 있는 나가수의 치열함 정도로는 더 이상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수 없다는 것이죠. 지금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아직도 나오지 않은 가수들이 언제든지 출연할 수 있는 무대를 지키고 있다는. 그래도 아이돌 천지의 세상에서 목소리로 승부하는 ‘가수’들의 무대를 기대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명분뿐입니다. 현재 이들은 경력을 비교할 수도 없는 아이돌 기획사 연습생 아마추어들의 경연보다도 주목받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고 있습니다. 나가수는 여전히 소중하고 고맙지만, 점점 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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