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justify;">플라톤은 법률(Nomoi)에서 알맞은 정도(적도 및 중용)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만약에 누군가가 한층 작은 것들에 알맞은 정도를 무시하고서 한층 큰 것들을 부여한다면, 즉 배에 돛을, 몸에 영양(음식)을, 혼에 통치권(권력,관직: archai)을 그리한다면, 아마도 모든 것이 뒤집어지거나 파멸할 것이며, 히브리스(hybris)에 빠져듦으로써 일부는 질병들로 내닫고, 일부는 히브리스의 산물인 올바르지 못한 상태(불의: adikia)로 내닫습니다."</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히브리스(hybris)에는, 그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례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는 한가지로 옮기기가 어려운 여러가지 뜻이 있다. '히브리스'는 남에 대해서건 자신에 대해서건 난폭함, 즉 지나침을 가리키는 말이다.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타인에 대한 경우에,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창피함이나 불명예, 모욕당함을, 곧 치욕을 느끼게 하는 오만, 오만 무례함, 방자함, 인격적·신체적·성적 폭행 등을 가리키고, 자신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폭식(대식), 황음, 술에 곯아빠짐 등의 무절제한 행위를 가리킨다.</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남에 대한 '히브리스'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한 의미 규정이 아주 적절한 것이라 하겠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히브리스는 그걸 당하는 사람에게 창피한 느낌을 갖게하는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인데, 이는 일어난 일 이외에 다른 것이 자기에게 일어나도록 하는게 아니라, 그저 쾌감을 갖느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앙갚음을 하는 자들은 히브리스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보복을 하는 것이다.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히브리스를 저지르는 자들에 있어서 그 쾌감의 원인은 고약한 짓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과 부자들이 히브리스를 저지르는 자들인데, 이는 히브리스를 저지름으로써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그런가 하면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히브리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판단(doxa)이 이성(logos)에 의해서 최선의 것으로 인도되고 억제될 경우에, 이 억제에 대해 '절제'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반면 욕망(epithymia)이 우리 안에서 비이성적(alogos)으로 쾌락으로 이끌리고 지배닫게 될 경우에 이 지배(arche)에 대해 '히브리스'라는 이름이 붙는다.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 <hr><br></div> <div style="text-align:justify;">플라톤은 히브리스를 지나침, 오만함 혹은 난폭함으로 이야기하면서 <br>그 결과로 지나친 쾌락추구와 이로 인한 올바르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어쩌면 히브리스는 자존감의 결핍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br><br>돈, 권력, 지식 그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이, 그를 통해 상대방을 찍어눌러야만 자신이 우월해진다고 믿는...<br>그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자아와 <br>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더라도 개의치않는 무분별함은...<br>오히려 우월성의 증명보다는 자신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br><br>또한 그러한 마음상태가 자기 자신을 향해 작용할 때조차도...<br>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당장의 쾌락에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값싼 자아와 <br>자신이 스스로에게 어떤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든 신경쓰지 않는 어리석음 또한 </div> <div style="text-align:justify;">자신을 망가뜨리는 일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br><br><br>플라톤이 죽은지 수천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을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스스로 돌아볼 여유도 없이...<br>진정 자신에게 귀속되지 않은 혹은 귀속될 수도 없는 헛것에 자신을 내맡기고 뽐을 내는 벌거숭이 임금님들로서...<br>혹은 농사도 짓지 않고 벼이삭이나 씹어먹으며 풍성한 수확을 바라는 농부와도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br><br>플라톤의 오래된, 하지만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말이야말로 곱씹어볼만 하고, 거기에 기대어 볼 만 하지 않을까 합니다. <br><br></div>
출처 |
박종현 역주(2009). 플라톤의 '법률'. 서광사 에서 발췌 |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갚게나, 소홀히 말고.(Phaedo, 1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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