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몇가지 잘못된 사실이 아닌가 하는 점이 있어 글을 써 봅니다.

핸드폰 제조사의 연구개발이 둔한 것은 통신사의 탓이라기 보다는 제조사 본인의 탓이 더 크긴 합니다.
원 글의 리플에서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 핸드폰 제조사들의 주요수익원은 내수시장이라기 보다 해외 시장의 몫이 클테니까요. 물론, 만악의 근원인 통신사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는 합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핸드폰을 내수시장에서의 반응을 살펴볼 여지도 없이 무조건 해외에 내다 팔고, 내수용은 다운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따로 만들어 팔아야만 하는 비정상적 시장을 만들어놨으니 제조사들의 연구개발에 악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보다는 제조사 본인들의 거시적 시야가 부족했고, 철학도 계획도 없이 나태했던 것이 더 큰 원인이라 봅니다.(물론 국내 사용자들이 최신 기술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만든 것은 거의 100% 통신사의 잘못입니다. 그리고 중소규모 SW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창의력을 꺾어 한국 모바일계 IT산업을 초토화 시켜놓은 건 통신사들이 망해버려도 못 다 갚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과실입니다)

OS개발이란게 사실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IT에 관심 없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OS란 우리가 사용하는 데스크탑PC의 윈도우XP, 윈도우 비스타 같은 녀석들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우리가 컴퓨팅을 하는데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역할을 담당해주는 녀석이죠.(스마트폰이 일반 핸드폰들과 구별되는 점이 바로 OS가 탑재 여부이고, OS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을 소형 컴퓨터라고 부르는 것이죠) OS를 만드는게 어렵다는 이유는 이러한 OS가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그 존재 목적 자체에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해야하기에 UI구조설계에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User Interface, 즉 사용자가 쉽고 빠르게 적응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획/디자인/기술 전반적인 부분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간혹 디자인적인 부분만을 지칭하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OS인 윈도우즈 시리즈를 예로 들자면, 사용자들이 이미 친숙하게 사용해오며 몸에 익힌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예를들면 우리가 컴퓨터를 켠 후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탕화면의 내컴퓨터를 더블클릭한 후 C드라이브 프로그램파일즈 플후나 인커밍 폴더를 차례로 더블클릭해 들어간다'라거나 '시작 버튼을 누른 뒤 프로그램(P) > 한글과 컴퓨터 > 한글97 클릭'을 한다거나 이런 행동에 매우 익숙해져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MS 윈도우 OS에 익숙해져있던 유저가 갑작스레 애플의 맥킨토시 시리즈를 사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가정해 봅시다. 맥을 켜려고 보니 어라? 키보드에 전원 버튼이 있길래 눌러보니 맥이 시동됩니다. 오, 이건 편하네 라고 생각하고 맥킨토시용 OS의 최신버전인 OSX의 시동을 기다립니다만, 처음부터 막히고 맙니다. 시작메뉴가 어디있지?... 키보드를 보면 Enter키가 없습니다. Ctrㅣ키도 없군요. Return키와 Command키란 녀석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마우스를 보니, 헉...버튼이 한개짜리네요. 아니 어떻게 마우스 버튼을 하나로만 사용할수 있지?란 생각이 듭니다. 화면상의 각종 창들 우측 상단엔 익숙하던 | _ | ㅁ | x | 버튼 3형제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애플의 UI 기술력이 워낙 막강하기에 조금 사용하다 보면 금방 익힐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처음 접하는 OS에 적응한다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죠. 새로운 프로그램 사용법 하나를 익히는 수준이 아니라 컴퓨팅의 기본 기반 자체가 바뀐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니까요.

익숙한 OS를 버리고 이미 존재하는 OS(그리고 MS보다 어떤면에서는 훨씬 뛰어난 UI기술력을 갖춘 애플의 OS)로 이동하는 것 조차도 이렇게나 부담스러운 일인데, 사용자로 하여금 '우리가 새로 만든' OS를 사용하게 만들기란 여간해서 가능할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구글에서 넷북/스마트북용 OS로 새로이 만들어낸 '크롬OS'의 경우에도 그런 난제를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구글이 가진 막강한 인프라가 있기도 하고 그것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들도 쌓여있습니다. (구글이 만든 웹브라우저, '크롬'과 이름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네이밍 센스 장난이 아니었죠) 그리고 구글의 궁극적 지향점을 추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에 그러한 부담을 감내하는 것 뿐, 구글 정도 되는 막강 SW기업도 OS 하나 만든다는 것은 정말로 크게 부담스러운 일이죠.

게다가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은 단순한 UI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어플리케이션의 기반이 되는 OS는 안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개별 어플리케이션이 버그 등으로 인한 불안정함에 시달린다면 그건 그 어플 하나의 문제로 끝날 수 있겠지만 OS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면 이건 큰 문제이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안정성'을 얻는 데에는 '노하우'가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OS들이 선뜻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물론 이것은 데스크탑 PC의 이야기일 뿐, 스마트폰 OS 시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스마트폰 OS는 데탑PC OS처럼 이미 시장이 고착화되지도 않았고, 먼저 선점한 강자들의 역사도 길지 않기에 넘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는 합니다.(데탑PC OS시장에서 위세를 떨치는 MS사의 윈도우가 스마트폰 OS쪽에선 고전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지는 해이긴 하지만 PDA시절부터의 전통적 강자, '심비안'도 있고, PC OS시장에서는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모바일쪽에서는 큰 가능성을 인정받는 녀석들도 많습니다. 애플의 아이폰OS가 급부상 한 이유 중 하나가 시장선점 논리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순수 UI기술력으로만 본다면 윈도우 모바일에 비해 훨씬 앞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것 역시 OS가 '가장 기본적인 처리를 해주는 녀석'이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한 문제입니다.

OS가 시장에서 좋은 호응을 받기 위해서는 OS하나 잘만들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잘 만든 OS라도, 그것 위에서 돌아갈 어플리케이션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정말 아무 쓸모가 없는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윈도우즈7을 사서 깔았더니 속도도 빠르고 다 좋은데...포토샵,곰플레이어,윈엠프,알집,스타크래프트...이런것들이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들이 '윈도우7에서는 지원되지 않습니다'라며 실행불가라면? 우리가 윈도우즈7을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요?(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윈도우7은 예로 든 것일뿐 실제 윈도우7이 이렇게 구린 녀석은 아닙니다;; 단지 같은 윈도우 시리즈라도 이렇게 버전이 올라감에 따라 일부 호환이 안되는 문제가 많기는 했죠. 98에서 XP로 업그레이드 되던 시절 "XP로 바꿨더니 98에서 잘 되던 게임이 안돌아가요"하는 말들이 흔했던 기억 나시죠? 그것 처럼이요^^;) OS가 유저에게 선택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쓸만한 어플리케이션이 이 OS에서 많이 지원되는가, 의 문제입니다. 애플의 OSX가 MS의 윈도우즈 시리즈보다 점유율을 앞서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OSX에선 게임 지원이 거의 안된다는 게 치명적인 이유였죠.

이 와중에, 이미 어느정도의 어플리케이션 인프라를 보유한 OS들 사이에다 빼어난 UI기술과 안정성을 담보로 한다 한들 새로운 OS를 하나 개발해 끼어들기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구글이 만든 스마트폰OS인 안드로이드OS 역시, 막강한 어플리케이션 인프라를 미리 구축해두고 뛰어들었지 결코 무대포로 마구잡이식 발표를 한 것이 아닙니다. 애플의 앱스토어에 대적하기 위한 구글의 안드로이드마켓이 무서운 강자로 취급받는 이유는 구글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던 SW브랜드 파워를 제대로 활용한 부분(개방적이란 이유로 기존 개발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실제 개방적 정책으로 재능있는 개발자들의 훌륭한 소스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있고, 앱스토어를 따라잡기 위해 미리 전술을 매우 교묘하게 잘 사용한 점도 있습니다.(애플 앱스토어에 올라가있는 어플 중 많은 유용한 녀석들이 구글과 손을 잡고 있거나, 구글 서비스를 빌려 이용하거나, 구글계?에서 만든 녀석들이니까요)

삼성이 이제와서라도 '바다'라는 독자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이 그나마 대견할 일이긴 하지만 기대보다 우려를,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SW를 찬밥 취급하며 대충 내굴리는 동안 시장은 이미 다른이들에게 선점당했고, 그들이 어플리케이션 인프라를 구축하는동안 자체 플랫폼이 없다는 이유로 구경만 하고 있었고(최소한 구글처럼 남의 앱스토어 더부살이라도 하며 인프라를 쌓았어야 했지만), 솔직한 얘기로 여태 국내에 내놓은 폰들을 보면 그 허섭쓰레기 같은 UI기획과 안정성을 가지고 OS자체도 그리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을게 뻔하니까요(아니나 다를까 OS자체의 모양새만 가지고 해외에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무지막지하게 까였죠)

정말 참, 시기적으로도 많이 늦었는데 어떤 거시적 계획을 가지고 준비해온 것도 아니고, 준비해갈 것도 아니고, 그저 앱스토어 뜬다니까 우리도 삼성앱스토어 만들자, 그저 구글도 OS낸다니까 우리도 하나 만들자, 이런 철학과 이런 좁은 시야를 가지고 눈에 훤히 보이는 얕은 수를 쓴다는게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IT, 그중에서도 SW산업은 수많은 작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가지고 들이밀고 싸우고 이겨내고 사라져가고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애플도, 구글도, MS도 처음부터 막강 제조업기반의 거대자본을 가지고 시작한 기업들은 아니었죠. 헌데 아직까지도 '중소기업 = 대기업 따까리'수준의 마인드를 가지고 대기업 위주 지원 정책에 올인하고, 대기업에게 중소기업이 '착취'당하는 구조를 방관하고, 언제든 무서운 신인 기업이 대기업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건전 경쟁의 구조'를 틀어막아 장래성 있는 중소기업은 돈없어 말라 죽고 돈많은 대기업은 위기가 없다보니 나태함에 빠져 창의력을 잃어가고, 이런 구세대적인 경제 구조, 경제 정책으로 IT 소프트웨어 산업은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드웨어 제조에는 무조건적으로 대량의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긴 합니다. 공장부지와 공장건물과 생산시설, 많은 인력과 그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소프트 웨어 개발은 한두명이 원룸 오피스텔 안에 앉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드웨어 산업은 대기업이 독점하게 되고, 신생업체들이 대기업과 경쟁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드웨어 개발이 반드시 필요한 '기반산업'이긴 하지만 벌어들이는 효율로 따진다면 소프트웨어 산업에 따라 올 수는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고 잘 팔아 대형 기업이 되었다 한들, 언제든 신생기업에게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앞서가는 기업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뒤쫓는 기업은 그들을 앞지르기 위해 매순간 피나는 노력을 붓고, 그것은 창의력이 매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어줍니다. 이러한 '정체되지 않는다는 특징'이야 말로 SW산업의 최고 장점이자 미래산업의 신동력으로 추앙받는 원인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이해없이 그저 IT쪽에 돈 몇푼 던져주며 말로만 지원약속하는 행태를 반복해봤자, SW산업조차도 기존 산업과 똑같이 취급해 SW개발을 대기업이 중소기업 하청이나 주는 수준으로 전락시킨 그 몰이해를 해결하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이번 정권에서도 일자리 창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실물 제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기반시설과 자금이 없어도, 그렇게 만든 제품을 보관하는데 필요한 창고부지도, 그것을 이동시키는데 드는 차값/기차값/배삯도, 해외 지사 설립에 필요한 어마어마한 돈과 인력도, 오프라인 마케팅과 영업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과 노하우없이도, 내 방안에 앉아 뚝딱 만들어낸 어플리케이션 하나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수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SW산업 입니다.

인터넷망, 통신망 사업(역시나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사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고, 소프트웨어가 돌아가야 할 하드웨어 제조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할 일 외에 월권행위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자신들의 노예마냥 부리게끔 방조하는 정부의 안일하고 무지한 정책으로는, 한국 SW산업의 미래는, 한국 첨단미래산업의 미래는, 단언하건데 절대로 암울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