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1. </div> <div> 어제는 아기 2차 예방접종을 한 날이었다. 주사 세 대, 먹는 약 하나. 주사를 놓을 동안만 불타는 불량감자 얼굴이 되어 울음을 터트렸고, 먹는 약을 먹을 때는 '이것은 무엇인가?'하는 사뭇 진지하게 파악하는 듯이 인상만 썼을 뿐 아프거나 열이 나는 일도 없이 잘 지내고 있어줘서 고마운 우리 똥똥이. </div> <div>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내게 고기는 신의 선물이나 마찬가지. 서방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가서 두 번째 판을 갈았을 때. 드디어 터진 똥똥이의 울음. 아이를 안고 달래고 유축한 맘마를 먹여도 그치지 않는 울음. 벌써 고기는 혼자 다 드신 서방. 나도 고기가 고픈데. 주문했던 갈비찜은 먹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젖을 물리니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잠든 아이. </div> <div> </div> <div> 배부르고 마음 편하니 좋지?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div> <div> 하지만 네 세상과 엄마의 세상은 서로 다르니 엄마는 네가 아픈 주사도 잘 맞고 잘 먹고 잘 자서 정말 고맙단다. </div> <div> </div> <div> 엄마 세상의 아빠는 아오, 완전 빡쳐!!! </div> <div> 어떻게 그 큰 고깃덩어리를 한 점 먹여주지도 않고 자기 혼자 홀랑 다 먹을 수가 있느냐고!!!! 아오!!! </div> <div> 아, 진짜 애기가 제대로 못 크면 다 서방 탓이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2. </div> <div> 예방 접종 후에는 아이가 하루 이틀 정도 기운이 빠져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어제도 먹고 자기만 하고 보채지도 않았던 우리 똥똥이. 오늘도 잠깐만 놀고 종일 먹고 자고 싸고만 반복하고 있다. </div> <div> 어른이 보기에는 놀랍도록 단순한 생활일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온 신경다발을 길게 길게 외부로 뻗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힘든 여행을 쉼없이 계속하는 중일 게다. 아기에게는 부모가 모르는 험난한 시련을 겪는 중일 수도 있을 테고. </div> <div> 잠을 자다 가끔씩, 혹은 자주 으아앙~하는 소리와 함께 무서운 듯 잠꼬대하는 아기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아기들은 끊임없이 추락하는 공포를 자주 느끼고 떨어지는 꿈을 잘 꾼다고 하는데 제왕절개로 태어난 우리 똥똥이는 허공에 붕 뜨는 꿈을 꿀까? </div> <div> 다만 꿈동산에서 나쁜 일진들을 만나 갈굼 당하고 모유셔틀 당하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div> <div> </div> <div> 어제 내가 고기 몇 점밖에 못 먹었다고 했던 말이 걸려서일까. 서방이 소고기를 2Kg이나 사서 보냈다. 아이 잘 키우라는 의미겠지. 고기, 없어서 못 먹지 버리지는 않는다. 며칠이 걸리든 두고두고 다 먹어줘야지. </div> <div> 지금은 일 때문에 떨어져 지내고 있는데 아침에 수유를 하다 심각하게 어지럼증을 느껴 헤맸더니 서방도 놀란 듯하다. 아기보다 내 건강부터 생각해주는 서방이 고맙지만 왜 같이 있을 때는 내가 보는 아기가 둘로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정말 힘들다. 차라리 말이라도 못하는 아기라면 훨씬 나을 텐데. 아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3. </div> <div> 이제 아기를 키운 지 61일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봤다. 아기가 나를 힘들게 한 날들은 하필이면 내가 무척이나 피곤하거나 아픈 날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아프고 피곤하기 때문에 아기 돌보기가 더 힘들었다는 말이리라. 내가 피곤하고 힘들면 아무래도 아기에게 한 번이라도 덜 웃어주고 덜 안아줬을 테다. 아이는 세상의 논리와 상대의 입장 같은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니 아이에게 오늘만 얌전히 있어 달라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div> <div> 아이는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지리하게 들어줘봤자 아이의 요구사항은 그때 마다 달라지기에 어른인 엄마가 느끼기에는 꽤나 피곤하고 힘들게 한다고 느끼게 된다고 생각했다. </div> <div> </div> <div> 내가 힘들고 아프거나 짜증날 때, 아이의 요구가 귀찮아 피하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힘든 것이고 아이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기 전까지는 계속 보챌 테니 덜 힘들기 위해서라도 빨리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자,라고. </div> <div> </div> <div> 아이에게 엄마는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엄마만이 아니라 주양육자를 대명사로 일컫는 말일 뿐이다. </div> <div> </div> <div> 아이는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상태라 생각하고 불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에게 끊임없이 엄마가 새로운 자극과 함께 함께 있다는 안도감, 자신이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니 요청하게 되고 그 요청을 들어줄 때 아이는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div> <div> 엄마가 자신이 귀찮다는 이유로 아이의 요구를 묵살하게 되면 아이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비관적 체념을 습득할 소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사물과 피아의 구분이 안 되는 영아기에는 더더욱 엄마의 역할에 따라 아이의 성격과 인성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div> <div> </div> <div> 무언가를 구분하고 판단할 줄 알 때에는 나름의 거름망을 통해 고통이나 충격을 완화하겠지만 스폰지처럼 있는 그대로를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영아기에는 더 신경을 쓰고 아이의 욕구를 조금이라도 빨리 충족시켜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못할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자책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div> <div> </div> <div>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질 경우 내 기분이 안 좋고, 내 기분이 안 좋으면 아이가 조금은 밉기도 하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또 아무 잘못 없는 애기를 잠시나마 미워했다는 게 미안해 또 자책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도 사람이다. 사람이라 완벽하려 노력해야 하지만 완벽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모자름을 받아들이고 '그럴 수도 있다'라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이 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하게 되니 나름 잘 선택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div> <div> </div> <div> 영아기의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이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의 근원이자 만물의 근원이고 이 세상일 테고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우려면 엄마들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 건강하지 않으면 아이를 대할 때도 웃음이 줄어들고, 아이를 잘 돌보고 싶어도 몸이 힘들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div> <div> </div> <div> 영아인 아이가 영아시기에 무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지금의 감각, 감정, 느낌 등등은 미술에서 스크레치 기법처럼 기저에 남아 살아가는 동안 그 모습을 불쑥불쑥 드러내리라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더 안정적이고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만큼 내가 힘들더라도 2년만 내 생활은 생각하지 않고 아이 키우는 데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div> <div> </div> <div> 사람에게는 대나무 마디처럼 시기라는 게 있어서 그 시기가 아니면 다시 하고 싶어도 못할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아기를 낳고 영아기를 거치는 시간이 여자가 아닌 엄마로서만 온전히 살 수 있고 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div> <div> 초등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듯이 아이를 다시 키우면 더 잘 키울 수 있을 듯하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사실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때는 또 그때의 사정이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금이라는, 순식간에 지나가서 과거가 되어버리고 미래는 항상 저 앞에서만 머무는 듯이 보이나 바로 지금이 되어버리는 이런 시간의 장난에 속지 말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에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고, 하다가 못할 때는 자책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아이와 함께 어른으로 부모로 더 성숙해지는 시간을 걸어갈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바라고 있다. </div> <div> </div> <div> </div> <div> 소고기,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소고기가 내일 온단다. 아이를 재워놓고 소고기 오면 구워먹을 준비를 완벽히 해놓고 있었는데. </div> <div> 배고파서 잠도 안 오고 소고기가 머리 위에 떠다닐 듯해서 나도 아이와 함께 우유나 한 사발 드링킹하고 남은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 </div> <div> 소고기, 소고기, 내가 고기를 못 먹은 게 도대체 몇 주가 된 게야. 아, 고기. 내 고기. 내 사랑스러운 고기... 흑,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사+람 = 삶
삶은 그저 사람이 생을 산다는 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과연 사람일까. 길 위에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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