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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년 8월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광주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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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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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주택은행에 입사해 서울로 올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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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대를 목격한 뒤 미래가 보장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광주로 내려와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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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플라스틱 공장에 노동자로 취직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역시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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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들불야학을 이끌던 박기순이라는 여인을 만나 그 역시 야학의 선생님으로 활발히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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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며 노동운동을 전개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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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78 년 과로와 연탄가스 사고로 박기순은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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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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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죽고 이어진 전두환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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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서울역 광장에 모인 백만명의 민주화 시위대에게 군대를 동원해 학살극을 벌이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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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에서의 유혈사태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미국대사관의 경고로 서울에서의 학살극은 겨우 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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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이상 민주화시위를 놔뒀다간 큰 위기를 맞겠다는 전두환의 판단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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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광주는 공수부대에게 포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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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학살과 지독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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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군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윤상원은 공수부대가 전남도청으로 들이닥치는 최후의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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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였고 끝내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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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의 나이 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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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년 그들의 이야기를 안타깝게 여기던 동지들이 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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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뤄주었고 광주 5.18 희생자 묘역에 그들은 나란히 누워 마침내 휴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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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혼결혼식 마지막에 불리웠던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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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률이 작곡하고 소설가 황석영이 작사한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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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모두 체포하여 고문하겠다는 엄포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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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이 노래는 점점 퍼져나갔고 마침내 민주, 시민운동 행사에서 국민의례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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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항상 불리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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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이명박 정부는 광주민주화 항쟁 기념식에서 늘 불러웠던 이 노래대신 방아타령을 부르게 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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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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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대통령 영상</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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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 묻고 싶은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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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가시밭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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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군대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피를 쏟으며 저항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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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투표장에 가기만 하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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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대혁명이 일어난 1798 년부터 150 년의 기간동안 수많은 혁명과 황제제도로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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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 점령당하는 전쟁, 매국노와 독립투사들의 치열한 대결을 거치며 1950년대가 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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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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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깟걸로 포기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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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일로 포기하고 조롱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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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홀로 거대한 제국에 맞섰던 독립투사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